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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전설(108회) • 경기도 광주군 만세시위(1) 109 시 승격) 지역까지가 광주의 관할지였고, 조선 시대 에는 현재의 의왕시, 군포시 대야동, 안산시 상록구, 화성시 매송면, 한강을 건너 남양주시 조안면 지역 까지 광주군의 관할지가 있었다.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의 전국 지방행정구 역 개편 때 광주군 군내면 관하 7개리 (산성, 검복, 불당, 오전, 광지원, 용미, 상산곡리) 와 세촌면 관하 7개리 중 6개리 (단대, 상대원, 수진, 복정, 창곡, 탄 리)를 묶어서 중부면을 신설하고, 중부면 산성리에 군청을 두었다. 또한 의곡면, 왕륜면을 합하여 의왕 면(儀旺面)이라 하고 수원군에, 양평군 남종면은 광 주군으로 편입하여 16개 면, 183개 리로 정리되었 다. 16면은 경안면, 중부면, 동부면, 서부면, 오포면, 초월면, 실촌면, 도척면, 퇴촌면, 남종면, 낙생면, 돌 마면, 대왕면, 언주면, 구천면, 중대면이다. 이후 부 분적인 조정이 있어, 1915년 한강 이북에 있던 동부 면 팔당리가 양주군 와부면에 편입되었다. 1917년 12월 군청 소재지를 경안면 경안리로 이전했다. 광주군은 서울과 가까운 지역이나 3월 26일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독립만세 시위의 불길이 타오 르기 시작했다. 중대면 3월 21일 중대면 송파리 사는 농민 장덕균(張德均, 28세)은 자신의 집에서 김준현(金俊賢)과 함께 독립 선언서를 만들었다. “조선국은 독립국임과 조선인은 자유민임을 선언 하고 강권 침략주의자인 일본제국의 굴레에서 벗어 나 민족적 독립을 확실히 하자.” “전조선청년독립단 은 우리 2천만 조선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 의 승리를 이룬 세계 만국 앞에서 독립을 이룰 것을 선 언한다” 라는 내용의 ‘선언서’ 20매, “조선 민족의 조선이 되며 조선 민족이 자유 독립한다면 민족자결주의상 정당하다”는 내용의 ‘조선독립신문’ 30매 등 총 50매 를 등사 인쇄했다. 김준현은 등사한 선언서와 독립신문을 여러 차례 광주군 중부면사무소가 있었던 남한산성 행궁 옛 광주군청 자리(현재 경안동사무소) 원경(이상 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