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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 서울, 독립운동과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⑬ 109 와 뉴타운 추진 과정에서 발굴된 유물이 전시된 은평역사실(2층), 한옥의 건축과정을 보여주면서 한옥의 과학성, 자연 친화성 등을 전시하고 있는 한옥전시실(3층) 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은평역사 실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 진관 사’라는 제목으로 진관사에서 발 견된 태극기가 전시되어 있다. 하 지만 구파발, 역촌리, 신사리, 녹 번리 등에서 벌어진 3·1운동을 비 롯한 은평구 독립운동의 역사를 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윤기섭선생기념비 지하철3호선 연신내역 연신내 물빛공원 입구에는 윤기섭선생기 념비가 있다. 윤기섭(1887~1959) 은 신흥무관학교 교장,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 의장, 군 무차장 등을 지낸 저명한 독립운 동가로 광복 이후에는 민주주의 민족전선 부의장, 남조선과도입 법의원 부의장도 지냈다. 윤기 섭은 경기도 장단 출신이지만, 1950년 2대 국회의원 선거(5·30 총선)에서 서대문(현 은평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하지만 6·25(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납 북되었다. 북한에서 재북평화통 일촉진협의회(재북평통) 집행위 원을 맡아 활동하던 중 여러 차례 단식투쟁으로 위장과 간장이 상 해 1959년에 서거했다. 윤기섭은 숨을 거두기 직전 동료들에게 “통 일을 못 보고 가는 것이 한이다”, “갈라진 조국을 후세에게 물려주 게 돼 죄가 크다”, “70평생 모든 것을 나라의 독립과 통일의 제단 에 바쳤건만…”(이태호, 『압록 강 변의 겨울』, 다섯수레, 1991, 441 쪽) 등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한편, 윤기섭 선생의 부인 박정 심 여사도 1994년 별세하기 전 까지 은평구 대조동(199-7)에 살 았다. 역촌리 만세운동을 비롯한 은평 구 일대의 3·1운동 인조별서유기비(仁祖別墅遺基 碑)가 있는 역촌리 당제산은 1919 년 3월 23일 김춘수(1876~?)와 문도치(1892~1980) 등이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 횃불을 들고 만세운동을 펼친 곳이다. 은평 일대에서는 역촌리는 물 론 구파발리·수색리·신사리·녹번 리·불광리·갈현리 등 거의 전 지역 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만세 ➊ ➊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내부 은평역사실에 전시되고 있는 진관사 태극기 ➋ 진관사에서 발견된 태극기 홍보 전시물(진관사 칠성각 앞) ➌ 진관사에서 발견된 태극기를 알리고 있는 진관사 입구 표석(이하 현장 사진은 필자 촬영) ➋ 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