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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북미 최초의 한인타운, 리버사이드에 ‘도산의 공화국’을 세우다 109 리버사이드 한인들은 376달러라는 거금을 모집하 였다. 1909년 2월 1일 북미 공립협회는 하와이 한인 합성협회와 통합하여 ‘국민회’가 되었고, 1910년 2 월 10일 대동보국회까지 합쳐서 ‘대한인국민회’가 되었다. 대한인국민회는 북미뿐만 아니라, 하와이, 시베리아, 만주, 수청 5개의 지방총회에 160여 개 의 지방회를 둔 해외 최대의 한인단체가 되었다. 리버사이드지방회의 「자치규정」 제정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리버사이드에도 1909년 국민회 리버사이드지방회가 설립되었고, 리버사이드지방회에는 차정석이 회장을 맡았다. 1910년 리버사이드 인구조사에 등록된 한인은 70 여 명이었는데, 실제는 300여 명이 거주하였던 것 으로 추산된다. 리버사이드 지방에 많은 한인들이 모이면서, 패류들도 출몰하여 한인의 명예를 손상 시키는 일도 적지 않았다. 동포들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해, 리버사이드지방회에서는 1911 년 11월 18일 총 22개조의 다음과 같은 「리버사이 드지방회 자치규정」을 제정하였다. 제1조 본 지방에 거류하는 조국 동포의 타락함 을 건져 공동한 행복을 구하며, 지방자치를 실행하 기 위하여 좌개(左開)한 약장(約章)을 정한 사. 제2조 술을 금지할 사. 제3조 노름을 금지할 사. 제4조 아편을 금지할 사. 제5조 쟁투를 금지할 사. 리버사이드의 지도자 김인수의 국민회 리버사이드지방회 입회증 (1909.2.1) 리버사이드지방회 임원을 지낸 김인수의 아들 김용련의 국민회 리 버사이드지방회 입회증(19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