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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전설(104회) • 수원의 독립만세시위(4) - 수원군 장안면 우정면 만세시위(2) 109 준비 3월 27일 장안면에서 는 구장회의가 있었다. 참석자는 수촌리의 백 낙열(白樂㤠 ), 어은리의 이시우(李時雨), 독정리 의 최건환(崔建煥), 장안 리의 이준식(李俊植), 덕 다리의 김대식(金大植), 사랑리의 우시현(禹始 鉉), 사곡리의 김찬규(金贊圭), 금의리의 이호덕(李浩 悳), 석포리의 차병한(車炳漢), 노진리의 이제윤(李濟 允)의 아들등 10명이었다. 수촌리 백낙열과 석포리 차병한이 주도했다. 차병한이 말했다. “며칠 전 방안리에서 시위로 체포된 사람을 일본 인 아이가 게다(일본 나막신)로 구타하는데 분이 나 서 견딜 수 없었소. 독립만세를 부릅시다!” 이틀 뒤인 3월 29일 오후 4시 반경 장안면 수촌리 차한걸(車漢傑), 이순모(李順模) 두 사람이 우정면 화 수리 846번지 화수리 주재소 순사보 오인영(吳麟泳) 의 하숙집을 찾았다. 오인영은 25살로, 1913년 19살 에 면의 고용원을 하다 순사보로 임용되어 1917년 화수리 주재소에 부임하였다. “우리가 독립만세를 부를 것인데, 너는 우리를 제 지할 텐가, 어떨 것인가?“ “직책상 제지를... 해야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이런 말이 돌아왔다. “네가 우리를 제지하면 널 죽여버리겠다. 여기서 있은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그리고 너 도 내 일 오후 5시에 쌍봉산으로 오너라. 마을 사람들 회합 이 있다.” 3월 30일 오후 4시 반경 순사보 오인영은 사복으 로 갈아입고 쌍봉산에 올라갔다. 차병걸과 이순모 외 에 우정면 석천리 김재식(金在植), 매향리의 백남표 (白南杓), 화산리의 기봉규(奇鳳奎), 조암리의 김문명 (金文明), 장안면 장안리의 최성학(崔成鶴), 독정리의 백남열(白南烈), 홍순근(洪順根)등 10명이 와있었다. 장안면과 우정면 만세시위 실무 책임자 모임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많이 모을 수 있겠소?” 차한걸이 운을 뗀 뒤 자신이 말을 이었다. “각 동민들에게 한국 독립만세를 부른다고 전달합 시다. 한 집에 남자 1명 이상 나오라 하고, 나오지 않 으면 집에 불을 지르고 가족은 전부 때려죽인다고 합 시다.” “좋소.” 장날을 기다리는 그런 시위가 아니었 다. 주민을 동원하여 한판 전쟁을 치르자는 것이었 다. “4월 3일 쌍봉산에 1차 집결합시다.” “그럽시다.” 날짜와 집결장소가 결정되었다. 특공대를 조직했 다. 차한걸, 이순모, 감재식, 우영규 4명이 일본 순사 장안면 수촌리 구장이자 천도교  남양교구 순회전도자 백낙열. 그 는 장안면과 우정면 3·1운동 전 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장안면 ‘3·1독립운동기념비’(필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