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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영국 런던에서 한국독립을 호소하다 109 최했다. 창립대회 의장은 로버트 뉴맨(Sir Robert Newman Bart), 서기는 윌리암스(W. L. Williams) 가 맡아 대회가 열렸다. 국회 대의사가 17명, 에덴버 그대학장 등 학자가 6명, 신문기자가 4명, 각 교회 목사가 9명, 귀족이 3명, 기타 유력한 신사가 62인 출석했다. 의장 뉴맨은 개회사에서 “본회는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분투하는 한국을 위해 찬조할 목적으 로 개회”한다고 했다. 맥켄지는 한국친우회 창립대회 연설에서, 일본정 부의 압박을 받는 한국에 대해 동정을 표하였고, 노 예적 지위에 있는 한국민의 자유를 회복시키는 것이 영국인의 전통적 정신이라고 고창하였다. 영국 한국 친우회는 회장에 로버트 뉴맨 바트, 서기에 윌리암 스, 회계는 하이슬로프(Walter G. Hislop), 간사에는 맥켄지, 집행위원 6명을 선출하였다. 영국 한국친우 회의 주요 구성원들은 극동무역과 관련되어 있거나, 3 · 1운동 당시 박 해의 대상이었던 기독교 관련 종교 단체, 반일적 지식인 등이며 당시 영국사회에 팽배한 반일적 분위기 를 대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파리위원부 서기장 황기환, 런던사 무소 설치와 운영 영국에서 반일적인 분위기가 조 성되자, 미국 워싱턴의 구미위원부 에서는 파리에서 뿐만 아니라, 런 던에도 외교기관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구미위원부에서는 맥켄지와 윌리암스에게 본격적으 로 런던에서 한국 독립운동을 선전해 줄 것을 부탁 했다. 이에 따라 이들은 1920년 6월부터 그러한 사 업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런던에 이를 뒷 받침해 줄 한국인이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적으로 외 교 활 동을 펼 치기 위 해 서 는 파 리 위 원 부 에 있 었 던 황 기 환 (黃己煥) 을 런던 에 보낼 1919년 파리의 한국민대표관 대표단. 김규식은 파리 샤토가 38호에 한국인 대표관인 한국민대표관과 한국공보국을 설치했다. 앞줄 왼쪽부터 여운홍, 건물 주인 부부, 파리 위원부 위원장 김규식. 뒷줄 두 번째와 세 번째가 부위원장 이관용과 조소앙, 맨오른쪽 이 서기장 황기환(국가보훈부 제공). 황기환(1886~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