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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 중국 관내지역 독립운동, 그 현장을 가다 ② 109 山) 기슭이었다. 거기 있던 사찰 천녕사(天寧寺)에 조선정치군사 혁명간부학교가 있었기 때문이 었다. 독립운동 진영의 간부를 양성 한 이 학교는 1932년 10월 난징 교외 탕산(湯山)에 있는 선수암(善 壽庵)이라는 암자에서 개교했다. 김원봉이 교장 겸 외교주임이 되 고, 황포군관학교 출신 의열단원 들이 교관을 맡았다. 제1기 입학 생 중 윤세주(尹世胄)와 시인 이육 사(李陸史)가 있었다. 뒷날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 작곡자로 유명해진 정율성(鄭律 成)을 포함한 2기생은 강소성(江 蘇省) 강녕진(康寧鎭)에서 가르쳤 고, 3기생을 받아 가르친 곳이 상 방진(上坊鎭)에 있는 황룡산의 천 녕사(天寧寺)였다. 1기생으로 졸 업한 윤세주는 2기생부터 교관 을 맡았고 의열단 내의 제2인자 로 떠올랐다. 그는 의열단 창립멤 버로서 국내에 침투했다가 7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와 복귀한 경력 이 있는데다가 모사(謀士)라고 불 릴 정도로 영리했다고 전한다. 한 편, 시인 이육사는 김원봉의 명에 따라 국내로 침투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세번째 교 사(校舍) 천녕사는 건물들이 거의 무너질 듯 퇴락해가고 있었다. 1 기생과 2기생 가르친 곳은 흔적 조차 없어졌으니 중국 정부와 협 조하여 이곳이라도 보존하면 좋 을 듯하다. 약칭 조선혁명간부학 교로 불린 이 학교 졸업생들은 이 육사처럼 국내 공작을 하거나 독 립군 부대의 초급지휘관으로 투 쟁하기 위해 남경을 떠났다. 민족혁명당 본부가 있었던 호가 화원 그 무렵, 김원봉과 윤세주 등 의 열단과 민족혁명당 간부들은 화 로강(花露崗) 지역의 묘오율원(妙 悟律院)이라는 옛 도교 사원에 본 부를 두었다. 조선혁명간부학교 출신 청년들과 새로 망명해온 청 년 투사들도 거기 묵었다. 중국인 대부호 호대해(胡大海) 의열단이 조선혁명간부학교 3기생을 가르친 강소성 상방진(上坊鎭) 황룡산의 천녕사(2018년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