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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우리 땅 • 경북 성주 109 적비(抗日義積碑)’가 세워져 야성 송씨 등의 이 지역 독립운동 관련 사실을 알리는데 기여하고 있다. 성주 지역의 여러 문중이 백세각 에 모여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파 리장서(巴里長書) 서명과 3 · 1만세 시위 참여를 논의한 일을 기념하 기 위해 ‘백세각항일의적비건립 추진위원회’가 주관하여 2004년 10월 29일에 기념비를 건립하였 다. 기념비로 오르는 계단 입구 오 른쪽에 송준필이 유림의 궐기를 독려하기 위하여 기초한 ‘통고국 내문(通告國內文)’을 새긴 기념판 도 세워져 있다. 기념비 앞면에는 ‘백세각항일의 적비’라고 한자로 새겨져 있고, 좌 우 옆면과 뒷면에는 백세각의 유 래부터 이곳에서 파리강화회의 에 독립청원서를 보낼 일을 논의 하고 유림 대표들이 여기에 서명 한 사정, 성주 지역의 독립만세운 동 상황과 그 공적을 기리는 비문 이 새겨져 있다. 당시 송준필을 비 롯하여 송홍래(宋鴻來)·송회근(宋 晦根) 등 송씨 일문 11인의 공적이 컸다. 2012년 11월에 국가보훈처 에서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1919년 3 · 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김창숙 · 곽종 석 · 장석영을 비롯한 유림 대표는 파리강화회의에 조선 독립을 호 소하는 파리장서를 보내는 운동 을 추진하했는데, 성주 지역의 야 성 송씨 문중은 여기에 적극적으 로 참여했다. 파리장서에 유림 대 표로 서명한 137인에 송준필·송 홍래·송회근이 포함되었고, 송규 선·송천흠·송우선·송인집·송수근 등은 서명인을 규합하는 데 힘썼 으며, 송회근은 파리행 여비를 조 달하였다. 성주 지역의 유림은 유진성(兪 鎭成)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들 과 연합하여 1919년 4월 2일 읍 내 장날 시위를 주도하였다. 4 월 2일 오후 1시경, 성주읍 관제 묘(關帝廟) 뒷산에 집결한 기독 교인들이 시장을 향해 독립만세 를 외친 것을 신호로 장터에 모인 3,000여 군중이 소리 높여 대한독 립만세를 불렀다. 이날 만세 시위 는 밤 11시경까지 계속되었다. 그 러나 경찰이 발포하여 이태희(李 兌熙) 등 여러 명이 현장에서 순국 하고 총상을 입었다. 한주학파와 독립군기지 개척운 동 본거지 한개마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는 성 산(성주) 이씨 집성촌이자 국가 민 속 문화재로 지정된 ‘한개마을’이 있다. 최근 이 곳은 모 드라마 촬 영지로 알려져 적지 않은 관광객 이 찾는 명소로 되어 있지만, 훨 씬 오래 전부터 오랜 인문적 배경 과 전통을 간직한 양반마을로 유 명한 곳이었다. 특히 근대 시기에 ‘한주학파’로 알려진 일군의 유림, 명사와 성주 이씨 일문이 파리장 서 독립운동과 해외 독립군기지 개척운동을 위해 만주 · 연해주로 집단 이주,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한 본거지가 되었던 곳이다. 한개 마을은 뒤로 영취산이 있 고, 앞으로 백천(白川)이 흐르는 전형적 배산임수 지향에 위치한 성산(星山) 이씨 집성촌이다. 이씨 들이 600여 년을 세거하면서 집 성촌의 고유한 풍속과 양반가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한개’는 큰 하천(백천) 가에 있는 마을이라 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2007 년 중요 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새마을운 동 등의 영향으로 변형된 가옥들 을 옛 모습으로 되돌리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디지털성주문화 대전』 참조). 한주학파는 1870년대부터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