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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2024년 10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여명이라 하며  대회 중 공회위 원회(工會委員 會)에서 결의한  것은 금후 공인 (工人)들은 침 략국에 대하여  군수품의 제조 와 운반을 거절 하기로 하였다  한다. 1936년부터 일제는 전면적 중국 침략전쟁을 적 극적으로 준비하고 있었고, 독일도 군비를 확장하여 주변국을 침략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러 한 시기에 개최된 만국평화대회에서 침략국에 대한 군수품 제조와 운반을 거부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결의라고 할 수 있다. 서영해는 만국평화대회에 참 석한 각국 대표들을 만나, 동양 평화는 한국 독립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우 리 민족이 일제의 압제에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전개 하고 있고, 전 세계인들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와 줄 것을 호소하였다. 1937년 브뤼셀에서 개최된 ‘9개국 조약회의’ 일제는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도발하여 중국 동북지방(만주)을 점령한 이후 중국대륙을 노리다 가, 마침내 1937년 7월 7일 중국을 향한 전면적 침 략전쟁을 일으켰다. 중국은 국제연맹과 9개국 조약 국에 일본의 침략에 대한 국제적 조정을 요청하 였 다. 그해 9월 국제연맹 중국대표 구웨이쥔(顧維鈞, V.K. Wellington Koo)은 국제연맹 조약 제10조·제 11조·제17조에 의해 일본 제제를 요구하였다. 국 제연맹 극동고문위원회에서는 9개국 조약(Nine- Power Treaty) 서명국과 극동에서 특별한 이익이 있 는 국가 간의 회의를 열어 일본에 중일전쟁을 종식 시키라고 권고하였다. 1937년 11월 3일부터 24일까지 벨기에 브뤼셀에 서 중국문제 해결을 위한 ‘9개국 조약회의(九國公約 會議, Nine Power Treaty Conference)’가 개최되 었다. 이 국제회의에는 ‘9개국 조약’ 서명국인 중국·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필리핀·네덜란드·포르투 갈이 참가하고, 그 외 소련·노르웨이·덴마크 등 19개 국이 참가하였다. 11월 24일 마지막으로 개최된 회 의에서 선언문을 발표하여 9개국 협약의 각 원칙을 재확인하고, 일본의 중국에서의 행동이 9개국 협약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장 조소앙이 서영해를 한국 독립당 파리통신원으로 임명하는 편지(1937년 6월  2일) 서영해가 임시정부에 보낸 「9개국 조약회의 참석 보 고서」(1937년 12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