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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2024년 8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지에 공립협회의 지방회를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1905년 12월 제일 먼저 리버사이드와 레드랜드에 지방회를 설립하고, 1906년 로스앤젤레스, 솔트레 이크시티, 락스프링스, 새크라멘토, 프레즈노, 핸포 드에 지방회를 조직하였다. 레드렌드와 리버사이드 에는 오렌지와 포도 농장이 많았고, 한인 노동자들 이 이곳에서 몰려들었던 것이다. 1906년 1월 초 리 버사이드지방회에서 공립협회 총회에 보고한 바에 의하면, 리버사이드 회원의 총수가 102명이라고 하 였다. 1906년 12월 공립협회 리버사이드지방회는 회장 에 이강(李剛, 본명 이정래)을 선출하고, 회원들의 생 활 향상을 지도하기 위하여 7개조의 자치규정을 제 정했다. 그런데 자치규정을 지금 보면 매우, 너무나 재미있다(홍언, 「대한인국민회 60년사(25회)」, 『신한 민보』 1962년 2월 15일자). 4. 남자와  여자 를 물론하고 한국  의복이나 내복 바 람으로 문밖에 나 가지 아니하고 꼭  옷을 입을 것이다. 5. 남자와 여자 나 문밖에서 담배 를 피우지 아니하 며 가로상에서 권 련을 피워 백인들 의 주목을 안받게  할 것이다. 6. 각 가정은 나무통을 놓고 오물을 담아 위생에  해가 없게 하며, 순경이 집안을 청결케 하라 할 때는  주인은 반드시 순종할 것이다. 리버사이드 한인들의 모범적인 생활에 대해, 『공 립신보』 1906년 6월 30일자에는 다음과 같이 썼다. “미국 백인들은 부지런하고 성실한 리버사이드 한인 노동자를 좋아했다. 그로 인해 일인 노동자는 한인 노동자가 자신들의 이익을 빼앗는다고 시기했다. 한 인노동자들은 농주가 원하는 대로 일을 해줄 뿐이라 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미국인은 한인의 종교와 학 업 그리고 노동생활을 칭찬했다. 술과 노름을 하지 않는 것과 본국 위하는 뜻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1908년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 페리부두에서 친 일 외교관 스티븐스 처단의거가 일어났다. 이후 장 인환‧전명운 두 의사의 재판비용 의연금이 모집되 었다. 샌프란시스코 의거가 일어난 지 단지 5일만에  대한인국민회 리버사이드지방회 「자치규정」(『신한민보』 1911년 1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