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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2023년 6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② 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의열단과 무관하다는 뜻을 발표했다고 보 도했다. 이 무렵,「폭발탄」이라는 제목의 4.4조 가사가 임시정부가 발행하 는 『독립신문』에 실렸다. 폭발탄아 폭발탄아 황포탄의 폭발탄아 전중적(田中賊 다나카를 뜻 함)을 만나거든 소리치며 터 지라고 천 번 만 번 부탁하고 정성 들 여 던졌거늘 네가 무슨 까닭으로 침묵하 고 있었더냐 좋은 기회 다 놓치고 어느 때 에 터지려고. 임정이 ‘우리와 무관하다’라고 발표했지만 「폭발탄」은 임정과 주 변에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음을 보여 주는 것 이다. 거사 이틀 전인 3월 26일 밤, 의 열단 단장 김원봉의 비밀 아지트 중 하나인 프랑스 조계 백이로(白 爾路) 정운리(停雲里) 18호에서 결 사대원들이 모여 결의를 다짐하고 유언을 남겼다. 이 자료는 성균관 대 임경석 교수가 발굴해 「독립운 동가의 마음에 어린 딸이 떠올랐 다」라는 제목으로 『한겨레 21』에 실었고 내가 『민족혁명가 김원봉』 에 인용한 바 있다. 늙은 어머니를 걱정하고, 어린 딸을 걱정하며 부 탁하는 장면을 읽으면 눈물이 나 온다. 오성륜은 1922년 5월 2일 탈출 에 성공했지만, 김익상은 일본 나 가사키(長崎) 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몇 차례의 감형으로 20 년을 복역하였다. 오성륜은 소련 에서 교육받고 돌아와 황포(黃埔 ) 군관학교 교관도 했으나, 만주에 서 투쟁 중 일제에 전향했고 일본 패전 후 북진한 조선의용군에 의 해 처형되었다(병사설도 있다). 황포탄 의거 현장은 현재 외탄 (外灘)공원의 북단으로 추정된다. 그 건너편은 중국개혁·개방의 상 징인 포동(浦東)지구가 자리하고 있다. 1920년대 의열단의 상하이 지 역 활동 관련 자료를 들여다보면 레닌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지원 한 자금을 김원봉과 의열단이 넉 『독립신문』에 실린 작자 미상의 「폭발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