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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이야기가 있는 우리 땅 108 2023년 3월 시되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를 수 도 있을 것이다. 평소에 찾는 관람 객이 거의 없었지만, 마침 이 전시 물을 찾아갔을 때는 몇사람의 관 람객을 찾아볼 수 있었다. 최근 3 년여 동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독립기념관을 찾는 국민들이 상대 적으로 줄어들어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을 찾은 사람이 더 적었을 것이다. 철거 부재의 전시 위치도 관람객들이 일부러 찾기 전에는 보기 힘든 위치에 놓여 있 는 탓도 크다고 여겨졌다. 영원한 식민지 통치 상징한 조선 총독부 건물, 그러나 이제 건축 물의 유한성 상징 서울의 대표적 상징공간 중 하 나인 광화문 광장은 조선시대 관 청거리인 육조거리였다. 그 중심 에는 경복궁이 자리잡고 있었다. 지금은 광화문부터 경복궁 근정전 을 거쳐 북악산으로 연결되는 광 장 중심부 시야가 탁 트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그러나 1995년 광복절까지는 네오 바로크(Neo- Baroque) 스타일의 거대한 석조건 물이 시선을 가로막고 있었다. 현 재 천안 독립기념관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에 잔해를 남 기고 있는 옛 조선총독부 청사다. 옛 조선총독부 청사 설계는 독 일인 건축가 게오르크 데 랄란데 (George de Lalande)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12년 설계 시작 후 기획설계를 남기고 1914 년 돌연 사망하여 일본인 건축가 들이 최종 설계를 완성하였다. 조 선총독부 청사는 건립 당시 동아 시아 최대의 근대식 건축물이었 으며, 중앙에 돔(dome)을 세운 외 관은 네오 바로크 스타일로 장대 한 위용을 과시했다.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일본 은 서구문명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특 히 당시 왕정체제 하에서 부국강 병을 추구하던 독일에 관심이 많았 던 일본의 조선총독부 청사가 독 일인 건축가에 의해 네오 바로크 스타일로 설계된 것은 결코 우연 이 아니었다. 이 건물의 구조는 당 시 최신 구조 방법인 철근 콘크리 트조이며 외부 마감은 국내산 화 강석으로 이루어졌다. 화강석은 현 재 동대문 근처 도시재생지역으 로 유명한 창신동에서 채석하였다. 조선총독부 청사는 연면적 3만 1,798m 2 (9,619평), 지상 5층 규모 의 방대한 업무시설로 ‘日’자형 평 면으로 설계됐다. 日자형 평면은 채광과 환기의 효율성을 고려해 중 정을 설치한 구조로, 당시 서구 대 형 건축물의 전형적인 평면 형태 였다고 한다. 그러나 흔히 일본을 상징하는 건물형태로 평가된다. 내부에 사용된 대리석은 색상 과 문양에 따라 경기도 양평 운악, 황해도 금천 고동, 평안도 순천 자 산 등 전국 9개 지역에서 캐온 것 이었고 철물, 가구, 공예품 등은 미국과 유럽 제품들이었다고 한 다. 중앙홀의 남북 벽면은 선녀 전 완공 직후의 조선총독부 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