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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 순국 선 열 길 따 라 얼 따 라 107 서북간도 한인마을의 경신참변(庚申慘變) 1920년 6월의 봉오동(鳳梧桐) 전투와 그해 10월의 청산리(靑山里) 전투에서 독립군에게 대패한 일 본군은 독립군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북간도와 서간도 일대에 살고 있던 무고한 한국인을 무참하 게 학살했던 사건이 경신년 한인 대학살사건, 경신참변(庚申慘變)이다. 만주로 침입한 일본군은 함 경도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까지 합류시킨 대규모 정규군을 투입하여 세계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 제는 약 2만여 명의 일본정규군을 동원하여 서북간도의 한인 3,600여명을 살해하는 한 편 3,200여 채의 가옥과 수십 채의 학교, 교 회 등을 방화 소실시켰다. 경신참변의 참화 를 입은 곳은 용정 동성용진 노루바위골, 화 룡 백운평, 연길 의란구 구룡평, 왕청현 대감 자촌과 백초구, 서간도 삼원포, 관전 하로하 등으로 서북간도 한인촌을 폐허로 만든 뒤에야 일본군은 두만강을 건너 철수하였다. 5 항일투쟁의 도시 연길과 용정(龍井) 한인의 자치활동 활발했던 연길시 간민교육회는 북간도 용정(龍井) 명동학교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애국지사들이 북간도 한인자치를 위해 설립하려던 간민자치회가 일본의 조직적 방해로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간민교육회로 이름을 바꿔 중국정부의 허가를 받아 북간도 일대에서 합법적으로 활동을 하였던 항일계몽단체이다. 1909 년 9월, 일본은 청나라 정부를 압박하여 간도협약을 체결하였다. 간도협약은 간도의 영토권을 중국 에 넘겨주는 조건으로 남만주 철도부설권, 무순탄광 채굴권 등과 간도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 대한 보호권을 받아냈다. 이것은 만주에서 항일독립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독립단체들의 활동을 방해하 고 , 훗날 일제의 만주 침략의 기회를 만들려는 음모를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간민교육회는 구춘선 박찬익 정재면 윤해 이동춘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하였고, 당시 연길 국자가 (局子街)에 본부를 두고 북간도 일대 지회를 두었다. 간민교육회 활동은 항일민족의식 교육, 생산조 합과 소비조합 활동, 야학을 통한 문맹퇴치운동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간민교육회는 용정의 명 경신참변 용정 노루바위골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