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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국제연맹의 본부 제네바에서 한국독립을 호소하다 107 Koreans in Manchuria)’이란 제목의 원고를 작성 하였고, 1933년 3월 4일 ‘만주의 한인들’ 원고를 멜 티그라프사(Multigraph)의 플뢰르(Fleur de Lys) 여 사에게 주었다. 이승만은 국제연맹 및 그 회원국 대 표들을 상대로 외교활동을 펼쳤고, 서영해는 3월 26 일 ‘고려통신사’ 명의로 이승만이 작성한 『만주의 한 국인들: 이승만 박사의 논평과 함께 리턴보고서 발 췌(The Koreans in Manchuria: Extracts from the Lytton Report with Comments by Dr. Syngman Rhee)』라는 소책자를 출간하였다. 이 소책자는 이승만이 만주사변으로 그 지역에 살 고 있는 한인들이 고통을 받고 또 희생을 당하고 있 다는 것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한 국의 독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널리 알리 고자 하였다. 그는 당시 일제의 침략 상황을 현지 조 사하여 작성된 『리튼보고서』에 자신의 의견을 붙여 국제사회에 일제의 만행과 한국의 상황을 알리고자 했다. 이승만은 『만주의 한국인』이라는 책자에서 만 주의 한인 문제들에 대한 정당한 고려 없이 만주분 쟁의 해결은 바랄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한국의 독 립 회복만이 19세기 말 이래 지속되어 온 일본의 대 륙팽창 욕구를 저지할 수 있는 보루가 된다는 사실 을 국제연맹과 그 회원국 대표들에게 납득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연맹을 상대로 외교활동 을 펼쳤던 이승만은 1933년 5월 21일 파리로 왔고, 런던으로 갔다가 6월 23일 파리로 돌아왔다. 7월 19 일 이승만은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가 폴란드 와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돌 아왔다. 8월 8일 프랑스 니스에 도착하여 정석해와 조지황의 도움으로 그곳을 여행한 후, 8월 10일 이 탈리아에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8월 16일 뉴욕 에 도착하였다. 이승만은 1933년 1월 3일부터 8월 10일까지 유럽에 머물며 국제연맹을 상대로 각종 외 교활동을 펼쳤다. 이승만이 제네바에서 머문 숙소 뤼시호텔(러시아호텔)과 현재의 뤼시호텔(필자 촬영) 이승만이 쓴 “The Koreans in Manchuria(만 주의 한국인들)” 표지와 서문(월간조선 제공) 국민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문화재전문위 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미주한인사회의 한국독립운동』, 『미주한인 사회의 독립운동가』, 『권승렬 평전』, 『일제의 한국농업정책사연구』, 『일왕을 겨 눈 독립투사 이봉창』 등이 있다. 필자 김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