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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영국 런던에서 한국독립을 호소하다 107 다. 그러는 사이에 영국과 일본의 제2차 영일동맹에 대한 교섭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이한응은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화 한다는 내용의 새로운 영일 동맹 내용을 대략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이한응은 리스 힐에서 본 윌리암스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보내고, 1905년 5월 11일 런던의 한국공사 관으로 돌아왔다. 5월 11일 아침 영국 외무부에 자 신의 건강이 ‘빨리 회복(speedy recovery)’ 되었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5월 12일 이한응은 주영공 사관 자신의 침실 뒤에 있는 못에 창문의 끈을 걸어 목을 매고 자결하였다. 이한응은 영국정부를 향해 외교활동을 펼쳤지만,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제에 의 해 침탈을 당하는 상황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한응이 순국하기 전날 영국과 일본은 영일동 맹 초안을 교환하였고, 1905년 8월 12일 제2차 영 일동맹이 체결되었다. 이로써 일본은 영국으로부 터 한국에 대한 지배를 인정받게 되었고, 러일강화 조약이 체결되면서 미국으로부터도 한국에 대한 지배를 승인받게 되었다. 도산 안창호에게 여비를 빌려준 중국인 도산 안창호는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기 직전 국 내를 탈출하여 중국으로 갔고, 다시 러시아 연해주 로 건너왔다. 도산은 북만주와 연해주 일대를 돌아 다니며 독립운동을 모색하다가, 러시아의 수도 상 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갑(李甲)과 작별하고 독일 의 베를린에 잠깐 머문 후 1911년 8월 15일 영국 런던으로 들어갔다. 도산은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 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영국에서 배를 타야만 했다. 영국인 한국친우회를 결성한 맥켄지(지평의병전 투기념관 제공) 중국인 왕홍성이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1912년 8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