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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 만주 · 연해주 독립운동,그 현장을 가다 ② 107 는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 반도 의 남단, 표트르 대제만(灣)에 포 함된 작은 금각만(金角灣)을 안고 있는 항구도시이다. 극동의 부동 항(不凍港)으로서 1860년대 이래 러시아 극동 진출의 발판 구실을 했다. 1903년에 시베리아 횡단열 차가 개통되어 러시아 중심부로 연결할 수 있게 되면서 그 위상이 더 커졌다. 지금도 러시아 해군의 태평양 사령부가 앉아 있다. 한국 유이민사, 항일투쟁사와 도 연관이 깊다. 초기이민 시대에 연해주를 지배하던 제정 러시아 총독은 연해주와 시베리아 개척 에 한인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자 유이민법을 제정하고 보호정책 과 함께 그들을 러시아화하기 위 한 동화정책을 폈다. 그래서 수많 은 유민이 두만강을 건너 이곳까 지 진출해 한인공동체가 형성되 었다. 그들은 이 도시를 해삼위(海 蔘威)라고 불렀다. 그리고 연해주 전체의 항일투쟁 역량을 응집시 키는 역할을 했다. 1937년의 한인 중앙아시아강 제이주 후 연해주에서 한인들의 삶의 흔적은 거의 다 사라졌다. 30년 전 내가 처음 이 도시에 갔 을 때는 개척리(開拓里)와 신한촌 (新韓村) 등 옛 한인 집거촌에서 둔덕이나 옛길 등 흔적을 볼 수 있 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간 2018 년에는 그것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옛 개척리는 해양공원으로 변해 옛 개척리는 현재 포크라니치 나야 1번지이다. 200미터쯤 아래 는 해안이다. 선착장과 모래펄이 있던 곳을 ‘웅덩마태’, 그 위쪽을 ‘둔덕마태’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해양공원으로 바뀌어 있다. 1900 년대에 개척리에는 망명해온 의 병장, 계몽운동가 들이 모여 살았 다. 1908년에 고종황제가 블라디 보스토크로 파천(播遷)하여 망명 정부를 세우려 한 적이 있었다. 실 현되었다면 이곳은 황제를 옹위 블라디보스토크역. 100여 년전 모습 그대로이다. 옛 개척리 전경. 아래에 블라디보스토크 카레이스카야거리의 시장이라는 설명이 있다(수원대 박환 교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