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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2025년 2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배달을 하기도 하였다. 찹수이 음식점 사업에 처음으로 주목한 한인은 ‘유일한(柳一韓)’이다. 유일한은 미시건 주립대학 재 학 중 윌리 스미스(Wally Smith)와 숙주나물을 유리 병에 키워서 팔았다. 그는 1920년 스미스와 ‘라초이 식품회사(La Choy Food Production Company)’를 디트로이트 시내에 설립하였다. 처음에는 유리병에 숙주나물을 넣어서 팔았으나, 나중에는 통조림통에 찹수이의 각종 재료를 넣어 판매하였다. 라초이 식 품회사의 찹수이 통조림은 미국 전역으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그리고 한인소년병학교를 같이 다닌 정양필이 라 초이 식품회사에 취직하였고, 정양필은 조오흥과 안 재창을 라초이 식품회사에 불렀다. 그러나 이들 세 사람은 1922년 찹수이 수요가 많은 디트로이트에서 정안주식회사(鄭安株式會社, Jhung & Company)라 는 찹수이 재료 도매상을 설립하였다. 정안주식회사 는 포드자동차, 학교, 백화점, 식당, 약국 등에 찹수 이 재료를 배송하면서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 었다. 정안주식회사는 설립 1년 만에 35,000달러의 매상을 올렸으며, 1925년에는 63,000달러의 매상 을 올렸다. 정안주식회사 외에 디트로이트에서는 찹수이 도 매상을 경영하는 한인들이 적지 않았다. 조대흥이 있었다. 조대흥도 찹수이 도매상으로 경제적으로 성 공을 거두었다. 거대한 2층 벽돌집을 지어서 1928 년도 3·1절 기념식도 조대흥의 자택에서 거행하였으 며, 동포들에게 만찬도 베풀었다. 그리고 찹수이 요 리점에서 요리사나 웨이터로 일하는 한인들도 상당 히 있었다. 찹수이 도매상에서 요리사로 있었던 이 원식과 중국 찹수이 요리집에서 웨이터 일을 하던 이정수는 상당한 돈을 벌어 1926년 4월 귀국하였다. 디트로이트의 한인들은 정안주식회사와 같이 찹 수이 도매업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외 김대벽의 세탁사업, 임용필의 화초 가계, 민병기 의 찹수이 요리점 등이다. 체육대학의 졸업한 허성 이 디트로이트중학교에서 체육교사를 하다가 1923 년 귀국했고,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가 조규섭도 디 트로이트 선교회 성경학교 음악교사로 근무했다. 디트로이트의 유한주식회사 유일한은 1919년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필라델 피아에서 개최된 제1차 한인대회(The First Korean Congress)에 참석하였다. 제1차 한인회의 의장인 서재필은 유일한과 김현구에게 3·1운동의 목적과 취지를 알리기 위한 영어 성명서를 작성하게 하였 다. 제1차 한인대회에서 채택된 결의문 가운데, 「한 국인의 목표와 열망(Aims and Aspirations of the Koreans)」은 총 10개조로 구성되었는데 독립 후의 국가건설에 대한 구상이 담겨 있다. 「한국인의 목표 와 열망」은 유일한과 김현구가 작성한 결의문이다. 유일한은 라초이 식품회사를 미국인 친구와 동업 으로 설립하여, 부사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1925년 자본금 2만 5천 달러로 유한주식회사를 창 설하고 사장에는 서재필에게 맡겼다. 유일한은 여전 히 라초이 식품회사의 창립자이고, 발매부의 매니저 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한주식회사의 사업에 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가 없었다. 유한주식회사는 필라델피아와 디트로이트에 사무 소를 두었다. 그러나 실제 본점은 디트로이트 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