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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2024년 10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국 대표에게 『한국문제(The Korean Problem)』라 는 제목의 선전 책자를 배포하였다. 당시 이 대회에 참석하였던 이의경의 소장본이 독립기념관에 기증 되면서 학계에 알려졌다. 『한국문제』는 가로 15cm, 세로 23cm 갱지에 인쇄된 원본이며, 표지에는 영 어·프랑스어·독어로 『한국문제』라는 제목 아래 원 색의 태극기와 동아시아 지도가 그려져 있다. 본문 은 ‘KOREA’라는 제목 아래 독일어와 영어로 각각 4쪽씩 되어 있고, 앞뒤 표지를 포함하여 11쪽으로 베를린의 살라드룩 운트 스타인코프(Saladruck & Steinkopf) 인쇄소에서 발간하였다. 세계피압박민족대회에 한국대표단은 한국문제를 본회의 의안에 상정해 주도록 의장단에게 요구하였 는데, 가부 표결의 결과 한국문제 안건은 강대국 대 표의 반대로 부결되어 한국의 존재는 무시되고 말았 다. 그러나 한국대표들이 이 대회에서 참석하 여 일 제의 식민통치를 비판하고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국 제사회에 환기시켰다는 점에 매우 의의가 있다. 또 한 이 대회는 국내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도 대회의 내용이 상세히 보도되었다. 1936년 브뤼셀에서 개최된 ‘만국평화대회’ 1934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대외적으로 외교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외무행서(外務行署) 규 정」을 공포하였다. 외무행서는 임시정부 외무부 산 하로 해외에서 임시정부를 대리하여 외교사무를 수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외무행서규정」 은 있었지만, 실제로 그것이 운영되었는지는 확실하 지 않다. 임시정부에서는 프랑스 파리 고려통신사 의 서영해(徐嶺海)를 임시정부 주불외무행서(駐佛外 務行署)로 임명되었다고 하는데, 그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1936년 3월 8일 임시정부 국무회의 에서 서영해를 주법특파위원(駐法特派委員)으로 선 임하였다. 주법특파위원에 서영해가 임명됨으로써 파리위원부 이후 끊어졌던 대유럽 외교를 이어가게 되었다. 서영해는 프랑스의 근대 학문을 배워 일제에 빼 앗긴 국권을 다시 회복하려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1920년 12월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파리 북쪽 보 배(Beauvais)의 공립학교 리세(Lycée)와 샤르트르 (Chartres)의 리세 마르소(Lycée Marceau)에서 6년 동안 공부했다. 1928년 파리의 고등사회연구학교 (École des hautes études sociales, EHES)에서 저널 리즘학(École de Journalisme)을 연구하였다. 그러 다가 1929년 ‘고려통신사(Agence Korea)’라는 통신 만국평화대회 관련 리셥션 보도 기사(『르수아르(Le  Soir)』 1936년 9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