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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2024년 8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지 농장에서 노동을 하던 동포들이 이를 그대로 실 천하게 되면서, 과수원 주인들을 비롯한 미국인들은 한인들을 신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리버사이드 한 인 캠프에 참여하는 동포들이 늘어나자, 도산은 집 을 따로 얻어 야학을 하자고 하였다. 그래서 리버사 이드에서 18명의 한인 노동자들이 모여 공립협회를 조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공립협회는 친목회 의 연장적 성격으로 조직체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 였다. 1908년 산버나디도(San Bernadino)의 San Born 보험회사가 제작한 지도에, 코티지 애비뉴(Cottage Ave)와 파차파 애비뉴 코너의 3에이커 부 지를 ‘Korean Settlement’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곳이 한 인캠프가 있었던 곳이다. 지도에는 2층짜리 회관과 16개의 단층 주택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 다. 파차파 애비뉴 1532번지의 본 건물은 빨간색으 로, 노동주선소는 공립협회 리버사이드지방회의 사 무실도 겸하여 사용하였다. 영어와 성서를 가르치는 성인 야학, 국어학교와 예배처소로도 사용되었으며, 대소 모임은 물론 결혼식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리버사이드에 세워진 ‘한인촌’ 리버사이드 파차파 애비뉴 1532번지는 사실상 대 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의 발상지이다. 위에서 언 급한 바와 같이, 파차차 한인마을은 미국인 토지 소 유주로부터 약 3에이커 땅을 임대하여 17동의 건물 리버사이드 오렌지농장에서 노동하는 안창호 안창호와 리버사이드 한인 노동자들(1912년)(출처 USC Digital Archives) 리버사이드 한인캠프의 한인노동자들(안창호와 부인 이혜련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