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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2024년 4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고한 생명을 빼앗았다. 이같은 사실은 독일인으로 동양미술을 전공한 부르크하르트 박사가 『보시쉐 자 이퉁(Vossiche Zeitung)』 1923년 10월 9일자에 「 한 인에 대한 대량학살」 이라는 제목으로 그가 직접 목 도한 바를 게재하였다. 그는 1923년 9월 1일부터 8 일까지 일본에 체류하고 있을 때 관동대지진이 발생 했으며, 한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참상을 당하는 현장 을 보았던 것이다. 부르크하르트 박사가 쓴 기사를 본 재독 한인들은 크게 분노하였고, 유덕고려학우회 에서는 10월 12일 ‘한인학살’과 ‘동포에게 고함’이라 는 제목의 전단을 제작하여 유럽과 미주, 상하이 임 시정부에 배포하였다. 1923년 10월 26일 독일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 독 일에 있는 한인들의 위대한 회의(Great Meeting of Koreans in Germany) 」 라고 일컬어지는 ‘재독한인 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는 일제가 관동대진재 때 저지른 만행을 세계 각국에 널리 알릴 목적으로 개최되었다. 그리고 재독한인들은 「 한국에서 일본의 폭정(Japanische Blutherrschaft in Korea)」 (1923) 이라는 선전문을 만들어 배포하였다. 이 선전문은 영문과 독문으로 만들어 각국의 주요 정부와 국민들 에게 배포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었다. 재독한인대회에서 배포한 영문 「 Japan’s Bloody Rule in Korea」 라는 선전문에는 한반도를 중심으 로 한 동아시아의 지도가 크게 그려져 있다. 선전문 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첫 부분 은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의 독립된 역사 전통과 이 를 침해한 일제의 침략과 식민통치, 3·1운동과 대한 민국임시정부의 수립 사실 등을 적고 있다. 두번째 부분은 관동대지진 당시 일제에 의한 한인 참상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은 한국독립의 열망을 밝히고 독립을 위한 한인들의 투쟁을 각국의 정부와 국민들이 적극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➊은 의열단이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를 저격했던 상하이 부두. ➋는 1차 저격에 나섰던 오성륜 ➌은 2차 저격을 맡았던 김익상 ➍는 최후 저격을 책임졌던 이종암(의열단100주년기념 사업추진위원회 제공). ➊ ➍ ➌ 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