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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편집부 부산 어린이대공원 수변공원 ‘박재혁 의사상’ 부산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박재혁 기려 부근에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탑, 평화의 소녀상도 박재혁의 1920년 9월 14일 부산경찰 서 폭탄투척 의거는 의열단 창단 이후 최초로 성공한 투탄거사였다. 그의 의거 를 계기로 의열단의 무장투쟁은 전국적 으로 확산 전개되었고, 나아가 해외 의 열투쟁으로 이어졌다. 예를 들면 박재혁 의거에 자극받은 최수봉은 3개월 후 밀 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졌고, 1921년에 는 김익상이 서울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던진 후 유유히 출국했다. 박재혁은 부 산의 대표적 독립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부산시 어린이대공원 수변공원 박재혁 의사 동상과 이 공원 입구의 ‘평화의 소 녀상’,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탑’은 함께 둘러볼 만 하다. 박재혁 의사 동상,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탑, 평화의 소녀상 등 부산 박재혁 의사상 과 그 주변 106 2023년 9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이야기가 있는 우리 땅 부산은 임진왜란 때처럼 1876 년 개항과 함께 일본인들이 가장 먼저 상륙하고 가장 늦게까지 남 아 있었으며, 1945년 8 · 15광복 당시에도 무장한 일본군들이 미 군정의 묵인 아래 자국민 보호 명 목으로 여전히 거리를 활보했던 곳이다. 일본 패전 직후에도 일본 군은 한반도에 무려 35만 명이나 주둔하고 있었는데, 부산은 주요 거점이었다. 제2의 대도시 부산, 독립운동 종합전시관 없어 특히 부산은 근대시기에 일본 의 수탈과 만행이 가장 먼저 시작 된 도시이면서, 또한 치열한 독립 운동이 펼쳐진 항일 거점 도시이 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 표적 독립투사가 박재혁 (朴載爀) 의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는 1920년 의열단 최초로 부산경 찰서 폭탄 투척이라는 성공적 거 ➊ 박재혁 의사상 앞 ➋ 박재혁 의사상 뒤 ➌ 원경 ➊ ➋ 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