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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대한민국 공군의 효시 ‘한인비행가양성소’가 창립된, 북가주 윌로우스 105 Bryant)를 도와서 레드우드시 비행학교(Redwood City Aviation School)를 졸업한 이초와 이용선이 조교사 임무를 맡았다. 한인비행가양성소의 폐쇄 한인비행가양성소 총재로 운영자금의 대부분을 부담하였던 김종림은 1920년 가을 추수기에 북가주 에서 일어난 미증유의 대홍수로 벼농사에 막심한 피 해를 입었다. 김종림은 윌로우스를 비롯한 각지에서 경작하던 벼 농지면적이 총 7,000에이커에 달했는 데, 추수를 앞두고 윌로우스 일대에 홍수가 계속되 면서 추수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김종림 등 한인 벼농사 경영자들은 큰 피해를 입었고, 쌀농 사를 통해 얻어질 수익의 상당 부분을 비행가양성소 의 운영자금으로 제공했던 김종림 등의 후원자들은 더 이상 지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비행기가 고장이 나도 수리할 비용이 없어 방치되고, 교관과 학생들 이 떠나게 되었다. 1920년 12월 운영자금이 없었기 때문에 비행학교 는 사실상 폐쇄되고 말았다. 비행가양성소가 폐쇄된 이후 이곳에서 비행술을 연 마하던 학생들은 다시 다른 비행학교로 가거나 혹은 학 업을 포기하였다. 1921년 1 월 박희성(Howard S. Park) 과 홍종만은 윌로우스 비행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새크 라멘토 비행장에 들어가 비 행술을 연습하였고, 3월에 는 이용근과 정몽룡도 새크 라멘토 비행학교로 와서 비행술을 연마하였다. 박희성은 레드우드시 비행장에서 항공면허시험을 치르다가 비행기가 고장 나서 300피트에서 떨어졌 다. 박희성의 비행기 추락사건 이후인 한인비행가양 한인비행가양성소에서 훈련을 받은 박희성의 국제비행사 면허증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박희성, 이용근을 육근 참위(소위)로 임명한 사실을 보도한 『독립신문』  기사(1921년 8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