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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미국 로키산맥의 한국독립운동 중심지, 콜로라도주 덴버 105 국민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문화재전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미주한인사회의 한국독립운동』, 『미주한인사회 의 독립운동가』, 『권승렬 평전』, 『일제의 한국농업정책사연구』, 『일왕을 겨눈 독립투사 이봉창』 등이 있다. 필자 김도형 지에 비분강개한 글을 발표하여 많은 의연금을 거둘 수 있게 하였다. 그는 네브라스카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1919년 「미국의 극동정책(The Orient Policy of the United states)」이라는 석사논문을 썼다. 3·1운동이 일어난 이후 우리나라가 각국과 맺은 조약을 정리하 여 『한국조약유취(韓國條約類聚)』라는 책을 발행하 였다. 그리고 1921년 한국의 독립운동에 관한 것을 연구하여, 아메리칸대학에서 『한국사정(The Case of Korea)』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19년 4월 필라델피아에서 제1차 한인회의를 개 최한 후, 이승만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구미위원 부를 설립했다. 구미위원부는 이승만이 이른바 ‘한 성정부’ 집정관총재의 자격으로, 미국과 유럽지역에 서 외교활동을 펼치기 위해 설립한 것이다. 구미위 원부에서 정한경은 외교위원으로 이승만을 도와 미 국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외교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1921년 11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는 워싱턴군축회 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알리는 활동을 했다. 정한경은 독립운동을 하던 시기를 제외하 고는, 1933년부터 콜로라도주 스프링스에서 살며 생업에 종사했다. 정한경에게 콜로라도는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생활하다가, 1941년 6월 이승 만이 워싱턴에 주미외교위원부 사무소를 개설하자,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정한경을 외교위원으로 파 견하기로 결정했다. 정한경은 1942년 9월 21일 워 싱턴에 와서 주미외교위원부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 다. 주미외교위원부에서 이승만과 함께 임시정부의 승인과 미국의 외교적 지원을 받기 위한 활동을 하 였다. 해방 이후인 1948년 8월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초 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이승만은 정한경을 주 일대표부의 대표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정한경은 주 일대표가 된 지 두 달만에 사직하고, 다시 콜로라도 로 돌아왔다. 그는 1985년 별세할 때까지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