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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국제연맹의 본부 제네바에서 한국독립을 호소하다 105 오. 이에 대표의 신분을 증명합니다. 대한민국 14년 11월 10일, 서기 1932년 11월 10일. 대한민국임시 정부 국무회의 주석 조완구·외무장 조소앙. 이승만은 국제연맹에서 외교활동을 하기 위해 임시정부로부터 ‘특명전권수석대표’로 임명받았 다. 그리고 스위스로 가기 위해 미국 국무부의 혼 벡(Stanley Hornbeck) 박사를 통해 외교관 여권 (Diplomatic Passport)을 받게 되었고, 1932년 12 월 23일 뉴욕을 출발하여 1933년 1월 2일 영국 리 버풀 항에 도착하였다. 서영해, 제네바에 고려통신사 분국 설치 이승만이 스위스 제네바에 도착하기 전에, 프랑스 파리 고려통신사의 대표 서영해가 이승만을 맞을 준 비를 하고 있었다. 서영해는 1929년 파리에 고려통 신사를 설립한 이후 제네바에도 고려통신사 분국을 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제네바 로시 16번지 (No 16 Rue Rossi)에 고려통신사의 제네바 분국을 설치하였다. 서영해는 1932년 11월 29일 「제네바의 자유로운 양심에 호소한다」라는 호소문을 작성하여, 제네바에 있는 각 언론사에 보냈다. 이 호소문에서 그는 지금 한국민들은 일제의 폭압적 지배로 장님· 귀머거리·벙어리가 되었고, 일본 군대에 지배를 당 하고, 토지를 빼앗겨 고국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을 제네바에 있는 언론기관에 알렸다. 또한 서영해는 1932년 12월 2일 일제의 만주 침 략을 강력하게 규탄하는, 「일본은 극동에서 무질서 와 전쟁을 일으킨 나라이다」라는 문건을 제네바의 언론기관에 배포하였다. 그 외에도 12월 7일 국제 연맹 일본대표 마쓰오 카 요스케[松岡洋右]를 반박하는 성명서, 12 월 10일 일본을 고발 하는 성명서 등을 제네 바의 언론기관에 보냈 다. 이처럼 서영해는 이 승만이 제네바에 도착 하기 이전부터 국제연 맹을 상대로 반일 선전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국 제연맹에서 선전활동을 위해 서영해는 자신이 쓴 한 국 역사소설인 『어느 한국인의 삶(Autour D'une vie Coréenne)』을 우편으로 보냈다. 이승만의 제네바에서의 외교활동 이승만이 1933년 1월 4일 제네바 공항에 도착했 고, 서영해가 마중나와 있었다. 제네바는 스위스에 서도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역으로, 이승만은 프랑 스어에 능숙한 서영해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 다. 이승만은 제네바 시내 중심가 몽블랑 광장에 있 이승만의 신임장 임시정부 특명전권수석대표 자격으로 활동하던 1933년 5월 2일 제 네바 국제연맹 본부 앞에 선 이승만(국사편찬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