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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독일 베를린지역 한인 유학생들의 독립운동 105 었다. 안봉근은 나치 치 하의 독일에서 박해를 피 해 이탈리아로 가서 거주 하다가 해방 이후 북한으 로 들어갔다고 전해지고 있다. 관동대지진 당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한 독일 한인 유학생 독일의 유학생들을 중 심으로 1921년 1월 1일 베를린에서 유럽 최초의 유학생단체인 유덕고려 학우회(留德高麗學友會) 가 결성되었다. 유덕고려 학우회의 회원들은 대부 분 고학으로 학업을 유지 하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학생 상호간의 구제활동과 중국 상하이 (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 및 대외선전활동, 유 럽에서 개최되는 민간차 원의 국제대회 참가 등 다 양한 활동을 펼쳤다. 특 히, 유덕고려학우회에서 는 1921년 11월경 「 통고 문 」 이라는 선전문을 발표하여 임시정부 지지와 존속 을 위한 입장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하였다. 1923년 9월 일본에서 이른바 ‘관동대지진’이 발 생 하자, 일제는 한인들이 소요를 일으켰다고 하여 무 부르크하르트 박사를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반영하여 한인 희생자를 총계 2만 1,600여 명으로 보 도한 『독립신문』 168호 2면 기사(1923.12.26자). 「적에게 학살된 동포 橫濱[요코하마]에만 1만 5천 총계 2만 1천 6백여명」으로 보도하고 있다. 유럽 최초 한인 유학생회 ‘유덕고려학우회’가 있던 건물(칸트스트라세 122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