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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 만주 · 연해주 독립운동,그 현장을 가다 ① 105 을 가졌던 이범윤(李範允), 대한제 국 참찬(參贊)이었던 이상설, 군대 참령이었던 이동휘 등이 갔다. 그 들은 강제합방 후 성명회(聲鳴會) 라는 강력한 반일 조직을 만들었 다. 그러나 성명회는 일본의 요구 를 받은 러시아가 이상설 등을 체 포 투옥함으로써 붕괴되었다. 이상설은 감옥에서 나와 이동 휘와 더불어 권업회(勸業會)를 만 들었다. 항일투쟁과 경제 자립을 목표로 한 조직이었다. 연해주의 한인 동포들은 대부분이 지난날 고국 땅에서 천대받은 농투성이 출신이었지만 조국 독립의 열망 이 컸다. 그 바탕 위에서 1908년 이범윤과 최재형 등이 의병대를 만들었고 안중근의 지휘로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했다. 1917년 러 시아가 볼셰비키 혁명의 소용돌 이 속으로 빠져들자 최재형 · 최봉 준(崔奉俊) · 문창범(文昌範) · 이동 휘 등이 전로한족중앙총회를 연 곳이 바로 이 건물, 지금 기술전 문학교 강의동으로 쓰이고 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기가 어려 웠다. 서울신문 취재팀은 검정색 의 국산 차 카니발 리무진을 타고 있었다. 50대의 경비원은 그런 차에서 내린 동양인 남자들이 큰 카메라를 들고 수첩을 펴며 다가 오는 게 꺼림직한지 막아섰다. 통역을 통해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멀리 아치형 현관 안에 태극기와 러시아 국기가 붙 은 현판이 보였다. 신문사 카메 라는 큰 줌렌즈로 촬영할 수 있 었으나 내 카메라의 50mm 줌렌 즈로는 불가능했다. 나는 착하고 참하게 생긴 여대생에게 초코파 이 세 개와 내 스마트폰을 건네 며 부탁했고, 여학생은 생끗 웃 으며 촬영해주었다. 여학생이 들 고 달아났다면 나는 큰 낭패를 보았을 것이다. 아게에바 가(街) 75번지 옛 고 려인사범전문학교를 찾아갔다. 최근에 도색을 해서 깨끗한 모습 으로 우리를 맞았다. 1917년 동 포들이 4만 루블을 모아 만든 이 학교는 시인 조명희가 강의했고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지금은 고려인문화센터 내부 전시물. 외부에 홍범도 장군, 안중근 의사 등 기념비가 서있다. 우수리스크 고려인사범학교 건물. 지금도 학교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