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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강양동에 주둔 하고 있던 일본군 헌병 국경초소를 공 격하였다. 일본군 후쿠에 산다로와 일 본군 4명을 사살하고 일본 헌병대 건 물을 불태우고 두만강을 건너 돌아왔 다. 다음날 독립군의 국내진격작전을 보고받은 남양수비대 아라요시 중위 는 이 공격에 대한 보복조치로 남양수 비대 1개 중대와 헌병 경찰중대를 이 끌고 두만강을 건너 공격해왔다. 봉오동 전투는 두만강변 삼둔자(三屯子) 전투를 시작으로 고려령, 후안산, 봉오동에서 벌인 대규 모 전투로서 일본군 제19사단 월강추격대, 남양수비대 등 5백여 명의 일본 정규군과 벌인 최초의 전 투로 기록되고 있다. 봉오동 전투는 항일무장투쟁을 통한 독립의지를 만방에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고, 이천 만 동포 들에게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던 항일 독립전쟁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어야 할 전투이다. 청사에 길이 빛나는 청산리 대첩 유적지 항일독립전쟁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로 기록된 청 산리 전투는 김좌진(金佐鎭)이 지휘하는 대한군정서(大韓 軍政署 : 북로군정서)와 홍범도(洪範圖), 안무(安武)가 지 두만강 삼둔자 전투 유적, 두만강 월청진 삼둔자(현재 : 도문 간평) (상) 봉오동 전투 승전비(도문시 봉오동) (좌) 봉오동 전투 유적지, 연변조선족자치 주 도문시 봉오동 저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