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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2025년 5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꽃을 넣고 아름답게 만들었으며, 금붕어도 함께 키 웠다. 매주 일요일이면 교회를 갔던 한인들은, 예배 가 끝나면 안창호·이혜련의 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고, 하루종일을 보냈다. 그래 서 도산의 집을 방문하는 동포들은 모두 이곳을 ‘도 산 꽃동산’이라고 불렀다. 도산이 대전형무소에 있을 당시 ‘안수산’을 위로 하고, 또 홍언이 도산에 대한 사모의 정을 담아 이같 은 시조를 지었던 것이다. 홍언의 중남미 한국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 홍언은 1919년 3·1운동 발발 직후부터 대한인국 민회 화교위원(華僑委員)으로 임명되어 1921년 상반 기까지 미국 및 캐나다 서부지역에서 중국인들을 상 대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였다. 그후 워싱턴의 구미위원부에서는 홍언에게 미국 동부에 서 화교를 대상으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할 수 있 게 하였다. 1921년 6월 초순 홍언은 중남미지역 중국인 들에 독립운동 의연금을 모집하기 위해 뉴욕을 떠나 중남미로 향했다. 홍언은 파나마·에콰도르·페루·칠레 등 중남미 제 국에 사는 중국인들을 방문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거 두기로 하였다. 그는 뉴욕에서 파나마로 갔고, 그곳 에서 다시 배를 타고 에콰도르의 과야킬(Guayaguil) 에 도착했다. 그리고 과야킬에서 다시 배를 타고 페 루의 수도 리마에 상륙하였고, 다시 배를 타고 칠레 로 들어갔다. 홍언의 남미에서의 활동상에 대해서는 『신한민 보』 1921년 9월 29일자 「홍언 위원의 대활동」이라 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이 신문기사는 현재까지 홍 언이 페루에 도착해서 활동한 내용을 가장 자세하 게 알려주는 유일한 자료이다. 이에 의하면, “『민성 홍언이 미국 국무부에 남미로 여행할 수 있게 허가해달라고 보낸 전보(1919년 8월 12일) 홍언의 남미 독립운동자금 모집 경로(『동아일보』 2016년 2월 2 6 일자에서 실린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