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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2024년 11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으로 임명하지는 않았다(「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대리 백일규가 보낸 서재필의 외교고문 위임장 양식 (1919.4.29, 대한인국민회 자료, 2-K06292). 서재 필은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재정 원조하에 필라 델피아에 한국통신부(Bureau of Information for the Republic Korea)를 설치하였다. 친한파 미 국인 헐버트 박사와 벡 선교사를 선전원으로 대미 선전활동을 펼 쳤다. 한국통신부의 설립 당시 사무 실은 서재필이 경영하고 있던 필 라델피아의 ‘필립 제이손 상회 (Philip Jaisohn & Company)’ 길 건너편 웨이트맨 빌딩 825호 (Weightman Building #825)에 세들고 있었다. 한국통신부의 주 소는 필라델피아 체스트너트 스 트리트(Chestnut Street) 1524번 지이며, 1922년 5월부터는 체스 트너트 1537번지로 옮겼다. 서재필의 한국통신부에서는 미주한인학생단(The Korean Students’ League of America) 에서 발행하던 영문잡지 『한국문 헌(Korea Publication)』을 인수 받아 『한국평론(Korea Review)』 을 1922년까지 발간하였다. 『한 국평론』은 1919년 7월 1일자로 필라델피아 우체국 2종 우편물로 등록되었는데, 1년 구독료는 2달러, 한 부는 20센트 였다. 한국통신부에서 발행한 『한국평론』에는 한국사정 을 알려,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자유를 쟁 미주한인유학생에서 발행한 『한국문헌 (Korea Publication)』 제1호(1919년 3월,  오하이오주립대학 소장) 필라델피아 한국통신부 서재필이 윤병구에 게 보내는 편지(1919년 11월 17일) 필라델피아 한국통신부가 있었던 건물 한국통신부에서 발행한 『한국평론(Korea  Review)』 제1권 제4호(1919년 6월, 오하 이오주립대학 도서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