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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2024년 8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도산 안창호 리버사이드에 최초로 공립협회 조직 1909년 2월 해외 최대 한인단체 대한인국민회 결성 밑바탕 한인단체, 한인교회, 한인학교가 삼위일체 이뤄 김인수 가족 등 정착, 안창호 등 독립자금 지원 북미 최초의 한인타운, 리버사이드에 ‘도산의 공화국’을 세우다 글 김도형(월간 『순국』 편집위원) 본지 김도형 편집위원의 해외 독립운동 이야기는 작년 7월호부터 12월호까지 미주지역 독립운동을 다루었다. 그리고 올해 2월호부터 7월호까지는 유 럽 각 주요 도시와 멕시코 · 쿠바지역 독립운동을 다 룬데 이어 이번호에서는 미국 LA 리버사이드에서의 한인타운 형성과 독립운동을 소개하기로 한다. (편 집자 주) 리버사이드에 몰려온 한인 노동자들 ‘리버사이드(Riverside)’는 미국 서부의 대도시 로 스앤젤레스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50마일 정도 떨 어진 도시이다. ‘리버사이드’라는 지명은 산타아나 (Santa Ana) 강변에 도시가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1871년 리버사이드에 적당한 오렌지 나무가 처음으 로 심어졌고, 브라질에서 가져온 바히아(Bahia) 품 종이 재배에 성공하면서 오렌지 산업이 크게 번성하 였다. 오렌지가 재배되면서 철도가 놓여지고 관개시 설이 발달하며, 리버사이드는 1895년까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 되었다. 미국에 처음 정착한 아시아인은 중국인들이었다. 미국에 온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도시를 대부분 한자로 표기하였다. 샌프란시스코는 상항(桑港), 뉴 욕은 뉴육(紐育, 紐約), 워싱턴은 화성돈(華盛頓), 로 스앤젤레스는 나성(羅城) 혹은 나부(羅府)라고 불렀 다. 미주에 간 한인들도 대개 미국의 도시들을 한자 식으로 불렀다. 리버사이드는 영어로 강변(江邊)이 라는 뜻으로, 중국인들은 하변(河邊)이라고 표기하 였다. 한국인들도 ‘하변’이라고 썼고, ‘리버사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