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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2024년 6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녀는 대서양을 건너 파나마에 서 뉴욕을 가기 전에 쿠바를 일 주간 들렸다. 최승희는 ‘룸 바’ 춤을 볼 기 회를 가졌다. “일주일간 아바 나에 있으면서 본격적 ‘룸바’ 를 보았는데 아메리카 기타에서 보던 것하고는 얼마 가 다른 조박(粗朴)한 보다도 정욕적(情慾的)인 것을 느꼈습니다”라고 하였다. 쿠바의 특산품로는 ‘시가’가 있다. 쿠바를 사랑한 미국의 대문호 헤밍웨이가 멋진 바에서 글을 쓰는 모습이 있고, 쿠바의 최고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도 멋지게 시가를 피우는 장면이 자주 등 장한다. 쿠바 최초의 한국인 이민자 19세기 말부터 북미 지역의 한국인 인삼 장사들 이 쿠바에 와서 중국인을 상대로 고려인삼을 팔려고 왔다 갔다가 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한국인 으로 쿠바에 누가 제일 먼저 정착을 하고 살았는지 는 알 수가 없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쿠바에는 설탕붐이 일고 있었고, 쿠바지역의 사탕수수농장은 많은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아마도 멕시 코로 이민을 갔던 한인들 가운데 누군가 쿠바로 이 주했던 것은 확실하다. 멕시코 베라크루스 항구에서 살던 이청용(개명 이해영)은 스페인어에 능숙하여 일찍 쿠바 아바나로 이주했던 것 같다. 『신한민보』 1920년 9월 30일자 기사에 의하면 “쿠바에 재류하 는 이해영씨는 1918년 12월 30일자에 득남하였다” 라는 기사가 난 것으로 보아 적어도 1917년 이전에 그곳에 거주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멕시코혁명으로 경제적 고난을 당하던 한인들은 1917년부터 경제사정이 좋은 쿠바로 이주하였다. 쿠바에 가면 돈벌이가 훨씬 낫고, 생활수준도 높아 자리잡기가 용이하다는 그럴듯한 소문이었다. 예컨 대, 사탕수수를 자르는 노동자들도 와이셔츠에 넥 쿠바 마탄사스지방회 집행위원장을 역 임한 박두현·이순희 부부(아바나 거주시 절 사진) 마탄사스 한인촌에 세워진 한인이민 기념탑(이상 필자 촬영) 아바나지방회를 창설하여 여러 해 동안 총무를 지낸 안순필·마리아 김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