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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국제연맹의 본부 제네바에서 한국독립을 호소하다 103 원회에 참석하였다. 이관용, 제네바 국제적십자 총회 참석 이관용은 파리의 한국민대표관 부대표를 사임 했지만, 유럽지역에서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꾸 준히 참여하고 있었다. 파리의 한국민대표관에서 는 이관용을 대한적십자사의 구주(歐洲)지부장 자 격으로 1920년 1월 15일 제네바로 출발하게 했 다. 이관용은 제네바에 있는 국제적십자위원회 본 부와 교섭을 진행하게 되었다. 1920년 3월 9일 국 제적십자위원회에 사무총장 고티(M. Paul Des Gouttes)에게 「 대한적십자사의 독립과 설립에 대 한 비망록(Memorandum) 」 등을 보냈다. 이 비망록에서 이관용은 1919년 3월 1일 한국민 이 독립을 선언하였기 때문에, 일본 적십자사에서 분리시켜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3 · 1운동 당 시 일제가 비폭력으로 행동하는 한국민을 무력으 로 탄압하였고, 일본적십자사는 한국인에 대한 구 호활동을 펼치지도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대 한적십자사는 1919년 8월 29일 국제적십자위원회 (CICR, Comité international de la Croix-Rouge, the 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의 원칙에 입각하여 재조직되었으며, 대한민국임시정 부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관용이 국제적십자사 총회에서의 외교활동은 『독립신문』 1920년 4월 22일자에 게재되었다. 이관 용은 제네바에서 각국 적십자연합회가 개최되었는 데, 여기에는 국제적십자총회에 승인을 받은 나라만 참석할 수가 있기 때문에, 한국대표가 국제적십자총 회에 참가할 수 있게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하였다. 국제적십자사 총회에 참석한 이관용은 그후 에도 1921년 10월 12 일 이탈리아 밀라노에 서 개최된 ‘국제연맹옹 호회연합대회에, 파리 위원부의 윤해와 함께 참관하였다. 그는 회의 를 참관하고 한국문제 에 대한 예비조건으로 연맹규약 조문의 해석 적 제안을 제출하였다. 루체른 만국사회당대회 개최지(현재는 카지노, 필자 촬영) 한국 관련 특별결정문(독립기념관 제공) 루체른 만국사회당대회(국제 노동자 · 사회주의자대회) 결의 문 · 임시헌장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