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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전쟁 4대 전투┃101 청산리 대첩은 서일과 김좌진이 지휘하는 대한군정서, 북로군정서와 홍범도, 안무가 이끄는 대 한북로독군부 등의 독립군 연합부대가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 새벽까지 화룡현 청산리 백 운평, 완루구, 천수평, 어랑촌, 천보산, 고동하 등지에서 일본군 19사단 보병연대와 6일 동안 십 여 차례 전개한 치열한 전투로써 일본군 1,200여 명을 사살하고 대승을 거둔 항일독립전쟁 최대 의 승리이다. ▶ 일본군의 북간도 침입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완패한 일본군은 대규모의 병력 을 동원하여 대한독립군 부대를 일거에 소탕하려 하였다. 만주 북간도 지역에서 나날이 강대해지고 군사력이 증강되어 가고 있는 독립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일제는 만주로 병력을 출병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기 위하여 중국인 마적단을 매수하여 1920년 10월 2일 훈춘에 있는 일본총 영사관을 공격하게 하였다. 일본군과 조선총독부가 마적을 동 원하여 꾸민 사건으로 일본의 교활한 음모를 여실히 보여준 훈 춘사건이다. 훈춘사건을 기화로 일본군은 만주에 있는 일본인과 공관을 보호한다는 구실을 붙여 두만강 을 건너 북간도로 출병했다. 일 본군은 제19사단, 제20사단과 제 13사단 및 제14사단의 일부 병 력과 관동군으로서 총 3만여 명 의 정규군 전투병력이었다. 일본군의 북간도 침입 정보를 입수한 서로군정서 김동삼과 북 로군정서 김좌진은 일본군의 추 격을 피하기로 결정하였다. 서 로군정서는 서간도를 떠나 내 두산 진지를 구축하기 위하여 유하현 삼원포, 합니하 등지를 떠나 백두산으로 향하고, 북로 군정서는 왕청현 서대파 태평 촌 사관연성소 졸업식을 마치 고 백두산을 향해 이동하기 시 작하였다. 북로군정서 총재 서 일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김좌진 청산리 대첩 기념비 (길림성 화룡시 청산리촌) 2002년 건립 훈춘 사건 유적지 (현재 길림성 훈춘시 공안국) 북로군정서 사관연성소 유적지 (길림성 왕청현 서대파 태평촌) 항일독립전쟁사에 길이 빛나는 청산리대첩(靑山里大捷) 6일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