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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하일기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① 103 14일 맑음. 수레 위에서 갑자기 머리가 울리는 증세가 생겼다. 얼음길이 울퉁불퉁 험한데다가 거친 돌들 사이로 움 푹하게 꺼진 땅에 마차 바퀴가 세게 부딪칠 때마다, 머리가 수레 위에서 흔들리기 때문이다. 수레 속에 있던 물건이 혹 깨어져 부서지기도 하고, 머리가 수 레 기둥에 부딪쳐 사람이 부지할 수 없었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만삭의 손부와 손녀 두 사람이 다. 가끔 안식구와 걸어서 마차 앞으로 가기도 하고, 달려서 뒤를 쫓아오다가 다시 마차에 타기를 반복했 는데, 그 괴로운 형상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15일 맑음. 오후에 회인현(懷仁縣, 현재 환인현, 고구려의 옛 수도가 있던 곳) 항도촌 이진사 집에 이르렀다. 이틀 을 묵은 후 항도촌 북산동에 사두었던 집에 도착했 다. 이진사 집에서 장(醬)을 사고, 길거리에서 땔감을 사고, 어떤 촌가에서 좁쌀을 바꾸어 입에 풀칠할 거 리를 대략 갖추었으나, 군색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16일 맑음. 방에 가리개가 없어 추위가 특히 심하다. 또 여러 집이 한 방에서 거처하니 비좁음을 견딜 수가 없고, 눈에 보이는 것마다 모두 생소하나 달리 변통할 수가 없어 민망하다. 다만 뜻이 서로 통하여 성이 다르면 서도 내외 구별이 없고, 일마다 서로 따르는 정의(情 誼)가 있어 다행이다. 17일 맑음. 집 동편에 참판 정원하와 주사 이건승이 거처하고 있었다. 한 번 만나보니 마치 오랜 벗 같아 자못 적적 함을 면할 듯하다. 김대락이 살던 ‘백하구려(白下舊廬)’. 김대락 등 내앞마을 의성 김씨 일문은 이처럼 좋은  집을 떠나 만주로 이주하면서 큰 고초를 겪었다. 김대락 일가의 남만주 이주 경로 (매일신문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