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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 만주 · 연해주 독립운동,그 현장을 가다 ① 103 행이 가능한, 가장 가까운 유럽풍 도시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우크 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한러관계 가 회복되면 틀림없이 다시 호황 이 될 것이다. 우수리스크 하면 네 분 선열이 특별히 떠오른다. 첫째는 독립투 쟁을 전개하다가 이곳에서 별세 한 이상설(李相卨) 선생, 둘째는 경신참변 때 일본군 총탄에 순국 한 최재형(崔在亨) 선생, 셋째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중병에 걸린 채 이 도시로 와서 생애를 마친 이 갑(李甲) 참령, 넷째는 서간도 신 흥무관학교 교관직을 떠나 이 도 시에 처음 발을 디디었고 눈부신 투쟁 뒤 다시 와서 재기병할 날을 기다렸던 ‘백마 탄 김 장군의 전 설’ 김경천(金擎天) 장군이다. 우수리스크는 우수리강 옆의 도시, 우리말로 소왕령(蘇王營) 또는 송황영(宋皇營)이라고 불렀 고, 발해 시대 지명은 소성(蘇城), 발해 시대의 성과 중국인들이 쌓 은 성이 있어서 쌍성자(雙城子)라 고도 불린 곳이다. 시베리아 횡 단철도와 중국에서 오는 철도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 러시아 지 명으로 니콜스코예-니콜스크 우 수리스크-보로실로프-우수리스 크로 변한 도시이다. 기사년(己巳年. 1869년) 함경도 의 대기근으로 유민행렬이 이어 져 한인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국 운이 기울자 홍범도(洪範圖) · 이상 설 · 이동휘(李東輝) · 이동녕(李東寧) 등 우국지사들이 찾아와 근거지 로 삼았다. 한 시간 거리 블라디보 스토크가 시발점인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많은 우리 선열들이 우수리스크역에서 내리고 탔다. 역사(驛舍)는 20여 년 전 처음 본 그대로였다. 애국지사들이 일 본 헌병이나 밀정 눈을 피해 조심 스럽게 드나든 건물, 그 앞의 드 넓은 광장은 뻘쭘하게 선 레닌 동 상을 빼면 황량하기만 했다. 초겨 울의 나목들은 앙상한 가지를 하 늘로 뻗치고, 북풍이 먼지를 일으 키며 달려갔다. 최재형 선생댁, 기념관으로 보존돼 군납업으로 많은 재산을 모아 의병대를 조직하고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최재형 선생은 존경 받는 지도자라 동포들이 도노야 (都老爺)라고 불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무총장을 지냈으 나 1920년 경신참변 때 일본군에 사로잡혀 처형당하셨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최 선생 댁은 기념 관으로 바꾸기 위해 내부 리모델 링이 한창이었다. 우리는 건물 정 면 외벽에 붙은 러시아와 대한민 국 국기와 양국어 안내문 현판을 촬영했다. 최재형의 집. 이 집은 연해주 의 대표적 항일독립운동가 이자 전로한족중앙총회 명 예회장으로 활동하였던 최 최재형이 살던 집. 지금은 최재형기념관으로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