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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2025년 5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생각하다가, 문장(文章)에 탁월한 식견을 가진 홍언 에게 부탁하였다. 1914년 4월 12일 홍언은 도산에 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 금일(今日)은 대희환광(大喜歡狂)하였사오니, 영애 (令愛)의 정명(定名)을 미묘(美妙)히 완전(完全)히, 또한 유의미(有意味)하게 득래(得來)하였나이다. 초(初)에는 ‘Jean(全)’이라 하였다가, 차(此)도 미 흡(未洽)하여 갱사(更思)하온즉 절묘(絶妙)하온 것 이 갱출(更出)하오니, 차(此)는 기개미명(其個美名) 이옵나이다. 영어(英語)로는 ‘Susan’ 한문(漢文)은 ‘수산(繡山)’이오니, 상주(詳註)하면 안방당시(安邦 當時)에 삼천리강산(三千里江山)을 수(繡)함이오, 차양(此孃)은 도산(島山)의 여(女)이니, 도산의 공업 (功業)을 수(繡)한다는 오의(奧義)를 구함(俱含)하였 나이다. 어떠하오니까? 홍언은 깊이 고심하고 또 고심하여, 도산의 마음 에 들 수 있는 정말로 ‘절묘’한 이름을 지었다. 그렇 지만 이름이 가진 의미와 해석은 더욱 더 훌륭했다. ’ 수산’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의 삼천리강산을 수놓 고, 도산의 위업을 드리운다는 깊은 의미를 포함하 고 있었다. 이처럼 도산은 홍언으로부터 첫 딸을 위 해 참으로 귀한 이름을 지었다. 이름의 아름다움도 그렇지만, 그 깊은 뜻은 도산의 마음에 속 들었다. 그 래서, ‘수산’이라고 정하였다. ‘도산의 꽃동산’을 방문한 홍언 도산 안창호는 1932년 4월 윤봉길의사의 홍커우 공원(虹口公園) 의거로, 일제에 체포되어 국내로 왔 다. 도산은 일제의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 도산 이 서대문형무소에서 다시 대전형무소로 이감되어 수감생활을 할 당시, 도산의 가족들이 가장 힘든 시 기였다. 홍언(동해수부)은 도산이 사랑하는 장녀 안 송종익 부부(가운데)의 결혼식에 참석한 이혜련과 홍언(오른쪽 끝) 대한인국민회 활동 당시 홍언(중앙)과 최정익(오른쪽), 강 영소(왼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