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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2025년 1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윌로우스 지방 한인들의 3 · 1운동 이후 독립운동 우리 민족이 독립을 선언하였다는 소식은 중국 상 하이(上海)에 있던 현순(玄楯, 1880~1968)이 1919 년 3월 9일 샌프란시스코의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장 안창호에게 전보로 알려왔다. 윌로우스라는 농촌 에서 벼농사를 짓던 ‘농부’에 불과하던, 한인들은 더 넓은 논밭에서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다. 3·1운 동 이후 윌로우스의 벼농장에서는 어쩌면 참으로 우 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짠한 일이기도 한 것이었다. 윌로우스지방의 벼농장에서는 한국인 농부들도 있었고, 한인들과 인접하여 일본인 농부들도 벼농사 를 짓고 있었다. 보통은 한인들이 먼저 논에 물을 쓰 고, 그 다음에 일본인이 그 물을 썼다. 그런데, 3·1독 립선언 이후 한인들은 일본인들에게 물을 전혀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미국인 땅주인에게 한인 들이 물을 주지 않는다고 호소하였다. 미국인이 한 인들에게 왜 일본인들에게 물을 주지 않는가 하고 물었다. 이에 한인들이 대답하기를 “우리와 왜놈과 는 서로 원수요. 또한 왜놈들이 한국에서 한인에 게 물을 주지 아니하는 것과 같이 지금 왜놈이 한국에 서 한인을 학대하고 살육하는 일을 생각하면 우리는 저들에게 농사하라고 물을 줄 수 없다”고 강경하게 거절했던 것이다. 이처럼 윌로우스의 한인들은 우리 국권을 강탈하 고, 3 · 1운동 당시 동포들을 학살하는 반인륜적 만행 을 저지른 일본인들을 미워하였다. 그리고 모든 미 주의 한인들은 일본인들이 하는 모든 일을 반대한다 는 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간장·된장 등 일본식품 에 대한 불매운동도 함께 전개하였다. 윌로우스의 한인들은 1920년 3월 대한인국민회 윌로우스지방회를 설립하였다. 윌로우스지방회의 회장에는 임준기, 부회장에는 전명운, 총무에는 윤 혁, 서기에는 석대원, 재무에서는 이흥만 등이 선출 되었다. 그리고 그해 4월 윌로우스에는 대한여자애 국단의 지부도 성립되어 회장에 임광정, 서기에 김 앨리스, 재무에 이관전이 선출되었다. 3 · 1운동 당시 북가주지역 한인들의 독립의연금 출연 내역을 기록한 대한인국민회 장부 기록(1919년 3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