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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2024년 7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랑스 파리로 가서 한국민대표관에서 활동하게 되 었다. 파리의 한국민대표관 부대표 이관용과 조소 앙이 1919년 8월 1일부터 9일까지 스위스 루체른 (Luzern)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사회주의자대회 (International Labour and Socialist Conference) 에 파견되었다. 이관용과 조소앙은 이 대회에서 대 한민국임시정부의 합법성과 한국독립의 당위성을 지적하여 각국 대표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 한국독립 승인요구서(1919. 8. 8) 」 를 제출하였다. 이에 8월 9 일 만국사회주의자대회의 결정에 따라 민족자결의 견지에서 한국민족에 대한 일본정부의 야만적인 폭 력과 압제에 항의하며 이민족의 멍에로부터 해방되 기를 원하고 자유로운 독립국가로서 인정되기를 바 라는 한국의 요구를 만장일치로 체결하였다. 루체른 만국사회주의자대회에서 한국독립에 대한 「 특별 결 의문(Special Resolution) 」 은 다음과 같다. 사실, 운명의 주인인 모든 민족과 피압박민족·예 속민족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는 진정한 국제연 맹을 창설함으로써, 모든 민족이 속박받지 않는 자 유 발전과 지속적인 세계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목 표로 한다. 루체른 국제사회주의대회는 한국 민족 의 의심할 여지가 없는 자기 결정권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족의 권리에 대한 야만적 폭력과 일본정부 에 의한 외국의 탄압에 항의한다. 이 대회는 국제연 맹에 한국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이 대회는 한국이 모든 외국의 압제로부터 확실히 해방되고 하나의 자유로운 독립국가로 인정할 것 을 요구하는 한국의 주장에 완전히 동의한다고 선 언한다. 루체른 만국사회주의자대회에서 한국을 국제연 맹의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고, 독립국가로 승인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런데 위의 결정문에서 ‘외국의 (foreign)’라는 표현이 문제가 되어, 한국대표로 간 이관용과 조소앙의 심각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 조 소앙에 의하면, 이관용이 ‘일본의(Japanese)’라는 단 어를 쓰지 않고, ‘외국의’라는 단어를 고집했다고 한 다. 조소앙은 ‘일본의’라는 단어를 주장했고, 이관용 은 ‘외국의’라는 단어를 주장해서, 두 사람 간의 다툼 이 있었다. 대회가 끝난 후 조소앙은 8월 16일 루체른에서 파 리로 돌아왔으나, 이관용은 한국민대표관 부대표 를 사임하고 파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조소앙은 만 국사회주의자대회 결의안이 통과된 후 이를 실현시 킬 목적으로 1920년 3월 23일 네덜란드 로테르담 (Rotterdam)에서 개최되는 국제사회당대회 집행위 1919년 한국민대표관(파리위원부) 대표단과 프랑스인 건물 주인 부 부. 앞줄 왼쪽부터 여운홍, 사무실 주인 부부, 파리위원부 위원장 김 규식. 뒷줄 두 번째와 세 번째가 부위원장 이관용과 조소앙, 맨오른 쪽이 서기장 황기환(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