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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2023년 6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① 해 전에 모두 잃은 상태였다. 13 세에 초혼했던 유씨도 잃은 상태 였다. 연속되는 가족과의 사별로 인한 상실과 박탈감은 몽양을 기 독교에 귀의하게 한다. 키도 크고 건장하며 잘 생긴 미 남 청년 몽양도 상실감과 박탈감 앞에서는 가슴이 무너져내렸나 보다. 19세에 재혼한 진씨가 있었 다. 한 살 연상이었고 모친이 위 독할 때, “며느리를 보고 눈을 감 겠다.”고 부모가 정한 혼사였다. 하지만 진씨에게도 마음을 두지 못했음일까? 인간으로서 몽양의 실존적 고독은 아내로도 채워지 지 않는 뻥 뚫린 공허 때문이었는 지, 신(神)의 자리가 따로 있어서 인지? 몽양은 기독교를 받아들인 다. 이 무렵 안창호 · 이동휘 · 이동 녕 · 이상재 등도 기독교로 개종하 여 기독교를 신봉하게 된다. 나라를 잃고 의지할 데를 찾던 민중들이 교회를 찾으면서 교세 가 확장되어 가던 때에 몽양은 권 사 직책을 맡고 열심히 전도에 나 셨다. 몽양의 설교를 듣고 수개월 사이에 4천여 명이 입교하게 되었 다고 한다. 이후 클라크 목사로부 터 신임을 얻게 되어 클라크가 교 수(敎授)로 있던 평양신학교에 입 학하게 된다(김삼웅, 『몽양 여운형 평전』, 채륜, 2015, 70~71쪽). 이번 양평 여행에서 몽양기념 관을 둘러보다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독립운동가로만 알고 있던 단편적인 조각보 같은 지 식이 와장창 무너지는 순간 이다. “장님이 눈을 감은 채 코끼리를 더듬고 코끼리에 대해서 다 아는 척한다.”는 말이 있다. 나뭇잎 하 나 보았다고 거목 전체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는 우(愚)를 범하는 게 인간의 한계인 모양이다. 나무의 뿌리, 줄기, 잎사귀 전체, 꽃, 열매, 나무에 찾아오는 새들까지 보아 야 한다. 통찰력 없는 단편적인 쥐 꼬리 지식으로 전체를 아는 척했 던 일. 부끄러운 마음이 몰려온다. 나는 신학에 대해서는 잘 모른 다. 중고등학교 때 교회에 다녔 고, 미션스쿨에서 4년 내내 채플 (예배)을 드린 게 전부이다. 그러 나 주기철 목사에 관한 글을 쓰느 라 몇 달씩 공부하면서, 신앙의 힘 을 알게 되었다. 신앙의 무서운 힘을 읽어낸 적 이 있다. 상동교 회 청년들이 교 회 지하실에 모 여 시국을 염려 하며 그들이 중 심이 되어 신민 회에 참여한 일 이나, 어윤희, 신 관빈, 심명철과 ➌ 해방 직후의 여운형(양평토박이신문 제공) ➍ 경기도 양평에 있는 몽양기념관(필자 촬영) ➍ 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