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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홍(河永泓1879~1915)
하영홍 선생은 석수동 최초의 기독교인으로서 1901년에는 삼막골 교회를 세웠다. 1904년 9월 14일 당시 시흥군수 박우량의 철도건설 노동자의 과다한 역부 모집과 노임 착복에 항의하는 「안양·시흥지역 2차 농민봉기」가 6개면 농민 수천 명이 참여한 가운데 일어났다. 하영홍은 광명 출신 성우경과 함께 이 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15년형을 언도받았으나 감형되어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묘는 안양3동에 있었으나 1960년에 화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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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래(李永來 1873~1949)
이영래 선생은 비산동 출신으로 1919년 3월 27일 광목행상 도중 관양동 백기회 집에 모여 있던 주민들에게 다른 마을에서는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불러 기세를 올리는데 당신들은 짚신만 삼고 있어야 되겠는가!" 라고 말한 후, 주민 5명과 함께 그날 밤 8시경 관양동 서쪽 언덕에서 독립 만세를 불렀다. 이 사건으로 경성지법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으며, 옥에서 석방후 광명으로 이주해 살다가 1949년에 운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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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태우(元泰祐 1882~1950)
원태우 지사는 안양동 출신으로 1905년 11월 22일 오후 6시 15분, 을사조약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서울로 가기 위해 안양역을 출발, 안양 육교를 지나는 순간 이토 히로 부미가 앉은 자리를 향해 돌을 던져 유리창이 박살나며 유리 파편은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에 여덟 군데의 상처를 냈다. 사건은 연일 신문에 보도되었으며 원태우 지사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징역 2개월에 곤장 백대를 맞고 이듬해 석방되었으나 심한 고문과 후유증, 왜경의 감시 속에 살다가 1950년 운명하셨다. 1990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