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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북가주의 한국독립운동 중심지, 새크라멘토 101 마일 남겨두고 비행을 할 수가 없었다. 북가주의 한인들은 모두 새크라멘토에 모여 독립선 언 제2년 경축식을 거행하였다. 비가 내리는데도 불 구하고, 400명의 한인들은 1920년 3월 1일 오전 10시 포트 스트리트(Fort Street)와 새크라멘토에서 제일 큰 길인 케이 스트리트(K Street)에서 출발하여 캘리포니 아 주청사까지 행진을 하였다. 주청사 앞에서 군악대 가 미국 국가를 불러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다시 새크 라멘토 시청사까지 행진을 하였다. 시청사 앞에서 군 악대가 다시 한번 미국 국가를 불렀다. 11시 30분에 3 · 1절 경축식장에 도착하여 경축식을 거행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윤병구가 개회를 선언 하고, 김영훈 목사가 기도를 하였다. 행사진행은 북 미지방총회장 강영소가 맡았다. 그러나 이날 비를 맞아가며 거리를 행진하였기 때문에, 부인들과 아이 들은 모두 비에 옷이 젖어 있었다. 부인들과 아이들 에게 옷을 갈아 입게하고, 점심을 먹게 하였다. 그리 고 오후 2시에 본격적인 경축 식을 거행하였다. 윤병구 중앙총회장은 새크라 멘토 시장을 만나기로 약속이 되었기 때문에, 중앙총회 총무 곽림대가 주석을 맡았다. 여학생의 애국가 독 창이 있고, 김영훈 목사의 기도, 이살음이 독립선언 서를 낭독하였다. 노백린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총 장이 주례하고 참석자들이 모두 일어나 독립문에 국 기경례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축시, 축사, 연설, 창 가, 주악 등 긴 시간 행사가 진행되었고, 마지막에 만 세 삼창으로 폐회하였다. 새크라멘토 한인들의 3 · 1절 경축식 미주 각지의 한인들에게는 두 가지의 중요한 경절 (慶節)이 있다. 하나는 3 · 1절이고, 또 하나는 2 · 1절이 다. 3 · 1절은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독립기념일이고, 2 · 1절은 1909년 2월 1일 미주 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가 북미지방총회 에 훈시한 독립선언 제2년 경축예전 절차 (1920.2.7) 새크라멘토 경찰국장의 3 · 1절 퍼레이드 허 가 통지서(1920.2.25) 새크라멘토에서 개최된 3‧1경축식에서 대 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윤병구가 한 영문축 사(192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