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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국제연맹의 본부 제네바에서 한국독립을 호소하다 101 스위스 유학생 이관용, 파리위원부 부위원장으로 활동 1918년 11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제1차 대전 뒤처리를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전쟁 관련국들이 모두 모여 평화회의를 개최하였다. 제1차 대전이 끝난 후 중국에 있는 한 국 독립운동가들도 파리평화회의가 개최된다는 것을 알았다. 신한청년당에서는 김규식을 대표로 파 리평화회의에 파견하였다. 신한청년당 대표 김규식은 1919년 4월 14일 파리 9구 샤토덩(Rue de Chateaudun) 38번지에 정식으 로 한국민대표관(韓國民代表館)을 설치하였다. 한국 민대표관을 우리 독립운동사에서는 ‘파리위원부’라 고 부른다. 한국민대표관 대표 김규식은 외교사무를 실질적으로 도와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스 위스 취리히대학에 유학을 하고 있던 이관용을 급히 불렀다. 당시 이관용은 졸업시험을 준비중이었는데, 김규식의 급전을 받고 즉시 파리로 가서 ‘한국민대 표관’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관용이 파리에 언제 도 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919년 5월 25일자로 김규식이 이승만에게 보낸 1919년 5월 25일자 편지 에 의하면, 취리히에서 “이관용이 이곳에 온 지 일주 일이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로 보아 이관용 은 5월 18일경 파리에 도착한 것 같다. 파리 한국민대표관의 대표는 김규식이었고, 이관 용은 부대표로 대외적 외교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리 고 황기환은 서기장으로서 한국민대표관의 모든 행 정적인 잡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 외 김탕·여운홍· 조소앙은 선전외교활동을 담당하는 한국통신국의 업무를 맡았다. 한국민대표관 대표 김규식이 1919 년 8월 워싱턴의 구미위원부 위원장으로 취임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김규식이 떠난 이후 그를 대리 하던 이관용은 10월 10일 부대표를 사임하고 학업 을 계속하기 위해 스위스로 돌아갔다. 이관용 · 조소앙, 스위스 루체른 만국사회당대회 참석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 조소앙은 프 당시 국제연맹 본부 현재 국제연맹 본부 건물(일명 윌슨궁) 국제연합(UN) 제네바 사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