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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전설(89회) • 경기도 시흥군의 만세시위 101 인들이 철시로 항일의지를 표시하였다. 이에 시흥군 수와 경찰서장이 폐점 중이던 시흥군 영등포 조선인 상인을 불러 압박을 가해 개점하게 했다. 4월 4, 6일 군자면 만세시위 4월 3일 군자면 각지에는 “거모리 경찰관주재소와 군자면사무소를 불태운다. 면민 전부 주재소 앞에 모 이라.”는 협박장이 배포되고, 벽보로 나붙었다. 영등 포경찰서에서 경관 6명과 보병 7명을 급파하여 경계 에 들어갔다. 4월 4일 오전 11시 거모리 경찰관주재소 부근에 강 은식(姜殷植) 등 약 1,000명의 군중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 다. 군자면 거모리 옆의 죽율리에서도 마을 농민 김천 복의 주도로 합세했다. 군경은 공포탄을 발사해 오후 2 시경 시위대를 해산시켰 다. 4월 6일 군자면 장현리 서당훈장 권희(權憘)는 자 기 집에서 ‘비밀통고’라는 문서를 작성했다. 내용은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이 래 10년간의 학정에 벗어 나 이제부터 독립하고자 하니, 각 주민은 조선독립 만세를 외치기 위하여 내 일 7일 군자면 구 시장에 태극기 한 개씩 가지고 모 일 것, 많은 사람을 결속시켜 시위운동을 일으키자” 는 것이었다. 이 문서를 면내 장곡리, 월곶리, 죽률 리, 군자리, 거모리 각 구장이 회람하게 했다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시흥군에서는 서서히 타오르다 마침내 크 게 폭발하는 양상으로 독립의지를 표출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3 ٠ 1운동의 지방시위에 관 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원 을 역임했고, 현재 3 ٠ 1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다. 3 ٠ 1운동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를 새롭게 정리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집필, 강연을 하고 있다. 필자 이정은 ❶ 군자면 독립운동 유적지(군자초 등학교 경내) ❷ 군자면 만세시위지(1989년) ❸ 군자면 만세시위 터(군자면 면사무소 현재 모습) 군자면 만세시위자 강은주 ❶ ❷ 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