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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운이 기울고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된 풍전등화와 같은 암울한 시기에 어둠을 밝히는 등대와 같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 고장이 낳은 남계 오석주 선생이시다. 선생은 선각자요, 교육자요, 목사이시다. 3.1만세운동과 신사참배거부로 두 차례 옥고를 치르면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으셨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건국이념 고취와 국민윤리 앙양 그리고 반공정신에 투철하셨다. 선생은 1888년 금산면 명천에서 오중구, 김재례 양친의 1남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나셨다. 본관은 동복, 호는 남계(南溪)이시다. 일찍이 한학을 연마해 동몽선습이란 관직을 받았다. 1907년 한익수와 선영흥이 세운 거금도 최초의 교회인 신흥리 교회예배에 참석 해서 크게 감동받아 이듬해인 1908년 명천교회를 세워 복음전파를 시작했다. 또 명천교회 내에는 영신학원과 유치원까지 병설 운영해 유년기 조기교육에 역점을 두어 훈육하였다. 선생은 우리 민족이 일어설 수 있는 것은 교육을 통해서만 개명할 수 있고 의를 구할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선생의 나이 21세였다. 영신 학원은 이후 30년 동안 운영하며 많은 지역과 국가의 동량을 배출하였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