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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2025년 2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①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갔더니 그의 부친이 국내에서 들어왔다. 요사이의 급박한 풍조를 대략 알겠으나, 자세한 것은 듣지 못 했다. 20일 맑음. 윤병렬과 예안 이희순 · 의정과 숙천 안성천이 와서 보았다. 평해 사동 이진포의 성이 김이라는 사람이 집에 네 살 난 아이가 있어, 배우지 않고도 글을 알고 또 글씨도 잘 써서 원근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폐 백을 가지고 문전을 메울 정도이다. 그 집은 그에 의 지해 산다고 한다. 이시영이 일꾼 다섯 사람을 데리 고 옥수수를 사러 왔다가 점심을 먹었다. 22일 눈. 조카 정식이 왔다고 한 지가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와 보지 않는다. 특별히 지체되는 이유를 모르겠다. 23일 [증조비(曾祖妣 - 증조할머니) 공인(恭人) 월성최씨의 기일이다] 실아(室兒 – 아들 김형식)가 대우구로 떠났다. 이는 집 주인이 와서 곡식 값을 독촉하므로 손자 창로가 편지를 써서 이준형에게 돈을 빌려 주기를 간청했기 때문이다. 24일 조카 정식이 들어옴으로써 엎드려 숙부 의 편지를 보았다. 또 학내의 편지에서는 (경주의) 양 동 이서방이 위 아래로 당한 비통함을 언급했는데, 다시 후회하는 탄식이 간절했다. 다만 처숙(妻叔, 처 삼촌)이 보낸 편지가 중간에 유실되어 한스럽다. 각 처에서 평안하다는 소식과 외손의 재주와 지혜는 모 두 위로가 되지만, 조카 만식이 가족을 데리고 뒤처 져 있다고 하니 가엽고 그립다. 이덕기, 김제철, 예안의 김병삼이 와서 잤다. 손자 창로가 일찍이 덕기의 돈을 빌려 썼는데, 지금 여기에 와서 돌려받으려 하나 갚을 수 없어서 미안스럽다. 25일 맑음. 실아가 대우구로부터 돌아왔으나 한 푼도 변통할 김대락의 집을 방문하여 신흥학교 건 축 일을 설명한 이동녕(1869~1940,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이시영과 함께 김대락의 집에 와서 신흥학교 짓는 일을 설명한 이철영 (1863~1925, 우당기념관 제공) 이동녕 등이 북간도 용정에 세웠던 용정서숙 (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