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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025년 5월 Column   명사 칼럼 ① 작은 소리 큰 울림 근우회여성들은 한국여성해방을 민족해방으로, 나아가 전세계인류의 해방으로 확대하여 통찰하였 다는 점과 각종 식민정책에 의해 착취당하는 식민지 여성, 그리고 봉건적 유습으로부터 억압받는 여성으 로서의 이중적 모순에 처한 조선 여성의 현실을 정확 히 인식하였다는 점에서 한국여성이 처한 엄혹한 현 실 속에서 여성운동의 좌표를 찾으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근우회의 활동과 역사적 의의 이러한 목표를 실현할 근우회의 구체적인 행동강 령은 7개조로 ①여성에 대한 사회적·법적·정치적·차 별철폐, ②일체 봉건적 인습과 미신 타파, ③조혼폐 지와 결혼·이혼의 자유, ④인신매매와 공창폐지, ⑤ 농민부인의 경제적 이익 옹호, ⑥부인노동자의 임금 차별 철폐와 산전 4주간 산후 6주간의 휴양과 그에 따른 임금지불, ⑦부인과 소년노동자의 위험노동 및 야업폐지 등이다. 이 행동강령은 결혼제도, 공창제(公娼制), 여성의 경제적 지위 및 노 동조건 등 당시 조 선 사회의 제반 여 성문제들을 집약한 것이었므로, 반(反) 제국주의 및 반(反) 봉건운동을 통해서 만 해소될 수 있는 성격이었다. 근우회 조직은 서울 에 본부를 두고 전국 각지와 일본, 만주(중국 동북지방)에 지부를 두었다. 본부에는 재무부, 서무부, 선전조직부, 교양부, 정치 연구부, 조사부 등의 기구를 두었다. 특히 근우회는 다양한 세력의 연합단체이어서 지 도체제 내에 회장제를 두지 않고 집행위원제를 채택 하였다. 또 지회 세력을 반영하여 매년 중앙의 중앙 집행위원회를 재구성하는 원칙을 지니고 있었다. 이 러한 제도는 각 지방에서 분산적으로 추진되고 있 던 여성운동을 근우회 지회로 통합 체계화했다는 점 에서 큰 성과로 평가된다. 지회와 회원 수의 증가로 1930년 말 60여 개 이상의 지회와 6천여 명 이상의 회원을 가진 단체로 성장하였다. 근우회 본부에서는 한국 여성의 의식 향상을 위한 강연회와 토론회를 개최해 여성해방의 방법과 문제 를 사회에 제기하는 선전효과를 거두었다. 또한, 지 회의 주된 활동은 여성의식을 계발하는 교양강좌, 여 성기술교육강습회, 부인야학, 남녀차별 철폐에 관한 토론회 등이었다. 또한 노동여성을 조직·지원하기 위 한 활동들도 이어졌다. 근우회 조직 내에 ‘노농부’를 근우회의 기관지 『근우』 창간호 (1929.5) 표지(독립기념관 제공) 1928년 7월 16일 열린 근우회의 전국임시대회 모습(경향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