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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025년 1월 Column     명사 칼럼 작은 소리 큰 울림  올해 2025년은 을사늑약 120주년의 해이다. 일제에게 외교권과 재정권을 중심으로 국권의 핵심적 부 분을 빼앗긴 원인과 과정을 돌이켜보면서 새삼 나라의 진로와 장래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을사늑약 120주년을 맞이하며 ‘나라 제대로 키우기’를 다시 생각한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 큰 교훈 현재 엄중한 국내외 상황 슬기롭게 극복해야 외교 부활·국내정치 개혁으로 ‘나라 제대로 키우기’를 글ㅣ김학준(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을사늑약’의 원천적 책임은 일본, 그러나 조선 지배층의 무능도 한몫 우선 1905년 11월에 굴욕적인 조약을 맺게 된 원인을 따져보면, 일제의 조선 침략과 병탄의 야욕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1868년에 이른바 명치유신(明治維新)을 기점으로 근대화 의 길에 들어섰다.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명치유신의 지도자들은 거의 모두 조선의 침략과 병탄을 꿈꾸었다는 사실이다. 그 점은 그들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구상 에 이미 잘 나타나 있었다. 그는 1854년에 집필한 『유수록(幽囚錄)』에서 일본이 “무력준비를 서 둘러 군함과 포대를 갖추고… 조선을 꾸짖어 옛날처럼 인질과 조공을 보내게 만들고, 북으로는 만주를 점령하고, 남으로는 대만과 필리핀 루손 일대의 섬들을 노획하여 옛날의 영화를 되찾기 위한 진취적인 기세를 드러내야 한다”라고 쓰면서 대단히 위험한 모험주의·침략주의 노선을 제 시한 것이다. 을사늑약의 선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물론이고 당대 일본의 지도자들 이 이 노선에 심취해, 결국 조선침략 → 만주침략 → 중국침략 → 동남아시아침략 → 미국침략의 길을 밟았다. 이렇게 볼 때 을사늑약의 원천적 책임은 일본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책임은 구한말(대한제국기) 조선 지배층의 무능에 있었다. 순조 → 헌종 → 철종을 거치며 쇠락의 길을 밟던 조선왕조는 26대 고종 때 왕비 민비(閔妃)를 중심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