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뱚2024년 4월 30일 (음 3월 22일) 화요일(신라기원 2081년) 2007년1월24일창간 제208호 12면(월간)뱚 지난 달 28일 정기총회에서 신임 이사장(총재)으로 당선된 박성수 이 사장은 지난 2일 낙원동 사무실에서 오릉보존회와 숭덕전의 업무를 박종 수 총장, 박성부 국장에게 각각 보고 받고 서명한 후 각자가 맡고 있는 모 든 업무에 대해 매뉴얼 작성을 지시 했다. 매뉴얼 작성은 변고가 있어도 후임자가 즉시 업무를 추진할 수 있 도록한다는것이다. 이날 업무인수인계 서명식에는 그 동안 오릉보존회에서 배제된 서울특 별시본부(회장박성율)가참석의미 를더했다. 이는 큰 바다가 되어 샛강도 강물 도 모두 포용하겠다는 박 이사장의 일성으로서울본부를비롯한일부광 역시도본부가배제되었고,숭덕전출 입제한 등의 조치 등으로 화합하지 못한종친회를화합하여하나로만 든 다는계획의일환이다. 신라오릉보존회신임박성수총재 업무인수인계서에서명 모든종사자에업무매뉴얼작성지시븣뷺큰바다가되어모두포용할것뷻 박성수이사장이공식업무에들어간지난2일오릉보존회와숭덕전의업무를보고받고있다. 신라경명왕의 적장자 밀성대군(휘 언 침)을 비롯한 아드님 삼한벽공도대장군 (휘욱),손자요동독포사(휘란)등3代춘 향이강남에갔던제비가돌아온다고전해 지는삼월삼짇날인지난11일(음3.3)오전 10시 경남 밀양시 소재 영남루 경내에 있 는 밀성대군단을 시작으로 밀성재 경내에 있는익성사에서각각봉행되었다. 밀성대군단 제향에는 보물로 지정된 영 남루를찾은많은관광객이지켜본가운데 인석 전 지마왕릉 참봉이 집례를 맡아 질 서정연하고 차분에게 진행되었으며,박종 후(밀직부사공 후) 제17대 남해왕릉 참봉 이 초헌관으로 헌작하고, 이어 박판기(사 문진사공 후)현종,박주정 청년회 감사가 아헌관, 종헌관을 각각 맡았으며, 박흥식 전신덕왕릉참봉이독축했다. 이어장소를익성사로옮겨오전11시삼 한벽공도대장군(휘 욱), 요동독포사(휘 란)제향을종식전청년회장(진주향교전 교)의 집례로 기옥 사문진사공파 부회장, 병목前교수(규정공후)께서초헌관을맡 아 헌작하고 이어 호수/성봉, 원태/ 성규 현종이 아헌과 종헌을, 종우 청년회장이 삼한벽공도대장군의 두 부인 소상에 분헌 관으로헌작하는등40여분에걸쳐진행되 었다. 이날 밀성대군단 초헌관으로 헌작한 종 후 현종은 남해왕릉 참봉으로 2년간 봉직 하였으며,성균관부관장으로예(禮)를숭 상한다.아헌관으로헌작한판기사문진사 공파 상임부회장은 익성사 초헌관으로 헌 작한 기옥 부회장과 함께 김제 삼송재의 모든일을주관하며궂은일도마다하지않 은 투철한 숭조심으로 타의 모범이 되고 있으며, 종헌관으로 헌작한 주정 청년회 감사는 농협에서 퇴직후 청년회 부회장과 감사를맡아청년회활성화에크게기여하 고 있다. 익성사헌관으로헌작한병목전교수는 평생 후학지도에 매진 후 현재 참판공파 파보 편찬 실무를 맡아 걸작을 만든다는 각오로봉직하고있다. 아헌관으로 헌작한 성봉 청년회 자문위 원은포항에서밀성재각종행사에빠지지 않은 열정으로 청년회를 발전시켜오는 등 제관 모두는 타고난 숭조심과 애종심으로 점철되어있어종원들의칭송이자자하다. 이날제례는전날습의(習儀)를통해예 법과제례절차등을익히면서차분하고엄 숙하게진행되었으며,지난해발족된제주 연구회에서빚은맑은술을제주로정성껏 올리고,음복주로도사용되었다. 그리고김포시종친회와규정공파,순천 숭성전, 거창군 종친회, 부산본부 등에서 단체로 참여하면서 500여 종원이 참례하 여추원보본의정성을다했다. 밀성대군단은 1922년(壬戌) 음 윤5월 3 일에 대폭우로 유실(流失)된 영남루 북정 에서구광(舊壙-옛무덤)이발견되어전통 (傳統)하는 바에 따라 밀성대군의 유지 (遺址)임이 믿을만하여 우선(于先) 밀양 청도양군의종족들사이에서설단협의가 이루어져그해당국에단지대여를신청하 여 1923년(癸亥)3월 7 일 무상으로 영남루 북정 유허(遺墟)에 12평을 허락(許諾)받 아 사업 추진이 구체화 되었고, 이후 전국 성손들의 모금으로 1924년(甲子) 건립되 었다. 비의 전면에는 븮密城大君之壇븯의 6字는 이강공전하(李堈公殿下)의전(篆-篆書) 으로봉전(奉鐫)했다. 밀성대군은 팔대군의 으뜸으로 밀성대 군으로 봉해졌는데 밀양부에는 이궁대, 풍류현, 세루정이 있었다. 세상에서 전하 기를 신라왕이 노닐던 곳이라 한다. 대군 은 신라 경명왕의 적자로서 이곳에 분봉 받았다. 이 본궁에는 처음 신라의 어진 이 가 있었으나 새로운 백성들이 동화되었으 니 이는 동경의 태평성세라 할 것인즉 궁, 현,정의이름도다시일반풍속에딸린말 이다. 권양촌이 이조 유사에 기록하기를 대군의유적이라고하였다. 한편 전날 밤 가진 개좌에서는 진국 명 예회장이직일(直日)로추대되어다음날 제례를 총괄지휘하였으며, 조사(曹司) 에는 순엽 은산부원파 회장,병승 평창향 교전교(행산공후),각준충헌공파회장, 공사원에는 임용(보명 원하) 전 난계공 파 회장, 인석 전 지마왕릉 참봉, 연희 청 년회지도위원,병기현임참봉,종우청년 회장이 추대되어 내외집사 분정을 마쳐, 영환, 근식 청년회 부회장이 알자와 찬인 을 맡아 제례를 도우면서 이날 제례는 더 욱빛이났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신라기원2081년밀성재춘향봉행 밀성대군·삼한벽공도대장군·요동독포사등3代븣박종후제17대남해왕릉참봉초헌 관헌작 밀성대군단제관,왼쪽부터원주대종회장,진국직일,종후초헌환,판기아헌간,주정종헌관,흥식축관,인 석집례관. 제향전일입재하여개좌를열어제관분정을마친후 분정기를기록하고있다. 분정기기록에는효근전 례위원이매년수고를아끼지않는다. 익성사제향광경(독축) 익성사제관(휘욱/휘란순)-초헌관기옥/병목아헌관호수/성봉.종헌관원태/성규.집례종식,축관현수/ 병인.분헌관종우순 븮눌지왕이 즉 위하자 천륜이 생각나서 변사 (辯士)를 찾던 끝에 그 분을 얻 었다네. 볼모 갔 던 동생을 다 오 게 하였으니 신 라의 천년동안 제일가는 충신 일세. 미사흔을 빼돌리고 부상 에 홀로 남아 갖은 음형 견디었으니 그 슬 픔오죽할까.동녘바다바라고고통곡하다 죽은 아내 그 충성 그 정절이 역사에 빛을 내네.븯 숙종대왕은 관설당 박제상 선생을 신라의 천년동안 제일가는 충신으로 꼽으 며이를기리는시를내렸다. 그리고 매년 음력 3월 5일이면 지역 유 림과 후손들은 몸을 가지런히 재계(齋戒) 하고 한데 모여 제향을 받들며 선생의 높 은 충절을 기리고 있어, 금년에도 지난 13 일 오전 10시 지역유림 주관으로 엄숙 봉 행되었다. 강원도유형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어 시청에서남다른관심을보여주고있는경 양사의제관은시장또는부시장이초헌관 으로 참여하고 지역유림에서 아헌관을 그 리고 후손이 종헌관을 각각 맡는 관례에 따라 양원모(梁沅模) 강릉시부시장이 초 헌관을, 허병길(許炳吉) 성균관유도회 강 릉시지부회장, 박경석(朴涇錫) 면천박씨 대종회장이 아헌관과 종헌관을 각각 맡아 헌작하고 최종덕(崔鍾德) 강릉향교 장의, 홍성삼(洪性三) 장의께서 집례와 대축을 맡아 45분에 걸쳐 차분하고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었다. 관설당공은 파진찬(婆珍飡) 물품(勿 品)의 아들로 삽량주(지금의 경남 양산) 의 간(干)으로 있다가 왕의 부탁을 받고 지략을발휘하여고구려에볼모로가있던 왕제(王弟) 복호(卜好)와 함께 귀국했으 며, 다음에는 왜국으로 건너가 볼모로 잡 혀있던왕자미사흔(未斯欣)을신라로탈 출시켰다. 그러나 그 자신은 왜군에게 잡 혀기시마[木島]에유배된후처형당했다. 그의 부인이 그를 기다리다가 망부석(望 夫石)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특히 왜왕 의회유에“내가차라리신라의개,돼지가 될지언정왜왕의신하로부귀를누리지않 겠노라”라고 말한 것은 선생의 진정을 말 해준것으로지금도유명하다. 그리고 선생의 후손들은 경주, 강릉, 영 해, 우봉, 면천, 니산, 구진, 노성박씨로 각 각 분관하여 전국에 산재해 있다. 이에 지 난해 본보 주선으로 관설당공파대종회를 결성하여 관설당 선조 현창사업에 함께하 고 있어 이날 제향에도 면천박씨 박경석 회장이 종헌관으로 헌작하고 영해박씨대 종회에서 박기호 고문, 박노정 부회장, 박 흥열 본부장, 박무호 울진문중 회장, 박응 조 울진문중 감사 등이 참석 선조의 얼을 기리고종원간의우의를다졌다. 경양사는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영 해의 운계서원이 훼철되자 강릉박씨 종원 들의헌성으로충열공박제상선생의영정 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일제 강점기인 1936년 건립되어 1977년 11월 28 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고, 제향 진설은 6변 6두를 진설한다. 이는 보 통의 서원에서 4변 4두를 진설하는 것에 비해 2품관 이상예우를 하면서 이같이 진 설하고있음을알수있다. 강릉지역유림신라만고충신박제상선생 기려 만고충신관설당박제상선생추모제향이위패가모셔진강릉경양사에서지역유림주관으로봉행되어제관 들이기념촬영을하고있다. 경양사시향(時享)엄숙봉행 관설당공의후예강릉,경주,영해,면천박씨후손들이함께모여종헌관으로참례하여헌작한경석면천박씨 대종회장을축하하며함께하고있다. 종헌관으로 헌작하고 있는 박경석회장 무안박씨 이십이파 3만여세대 70,000여 명의총본산(本山)이자구심점역할을하 고 있는 경기묘(景基廟)춘향제례가 무안 박씨대종회(회장 중환) 주관으로 지난 9 일봉행되었다. 이번 제향은 전국에서 300여 종원이 참 례한 가운데 본전 무안군(務安君, 휘 진 승) 제향에는 효락 영해파 회장의 집례로 태수(무안파), 종자(영해파), 주화(해남 파)현종이 초헌과아헌종헌을 각각 맡아 헌작하고 일훈(영해파) 현종이 축관으로 독축했다. 2世 금자광록대부 좌복야(金紫光祿大 夫 左僕射) 휘 섬(諱 暹)을 주벽으로하고 4世 보국숭록대부 상장군(輔國崇祿大夫 上將軍) 휘 유(諱 찮 ) 5世 보국숭록대부 상장군(輔國崇祿大夫上將軍)휘성기(諱 成器), 6世 금자광록대부 좌복야(金紫光 祿大夫 左僕射) 휘 교(諱 넴), 6世 은청광 록대부 밀직사(銀靑光祿大夫 密直副使) 휘부(휘 ).7世은청광록대부영동평장 사 면성군(銀靑光祿大夫 領同 平章事 綿 城君) 휘 문오(文.晤), 7世 문정 보국정헌 대부 호부상서(輔國正憲大夫 戶部尙書) 휘 문정(諱 文正) 공의 위패가 봉안된 경 묘사(景廟祠-東廟)에서는 광수(무안파) 현종의 집례로 근배(무안파), 재성(홍산 파), 성옥(적성파) 현종이 헌관으로 헌작 하고,병식(무안파)현종이축관으로독축 했다. 3世 윤위 보국정헌대부 검교대장군 (輔國正憲大夫 檢校大將軍) 휘 윤위(諱 允位)를주벽으로 7世금자광록대부공부 상서(金紫光祿大夫工部尙書)휘문연(諱 文衍),8세흥록대부이조총랑(興錄大夫吏 曹摠郞) 휘 윤유(諱 允 ), 9世 통정대부 한성부소윤(通政大夫 漢城府小尹) 휘 천 무(諱 天茂) 10세 보국숭록대부 령중추부 사병조판서(輔國崇祿大夫領中樞府事兵 曹判書) 휘 의룡(諱 義龍), 11世 가선대부 형조참판(嘉善大夫 刑曹參判) 휘 강(諱 綱),12世가선대부호조참판(嘉善大夫戶 曹參判)휘 형(諱 亨)공의 위패가 봉안된 경조사(景祚祠-西廟)에는 영해파 준(浚) 현종의 집례로 종한(해남파), 규한(해남 파), 성기(해남파) 현종 이초아종헌을무락(영 해파)현종이 축관을 맡 았다. 제례에 앞서 봉두 자 문위원장(해남파)는 경 기묘 건립과정을 설명 하고 할아버지 앞에 서 있다는 생각으로 단정 한 몸가짐과 공수 등 수 신(修身)을 강조하였으 며, 형준 직전회장은 어 려운여건에서도대종회를잘이끌어가는 중환회장의노고를치하하고우리모두는 한마음한뜻으로대종회운영에적극동참 하여줄것을당부했다. 무안박씨는 경명왕의 제6자 휘 언화(諱 彦華)완산대군의8대손휘진승(諱進昇) 께서고려조국학전주(國學典酒)로기자 팔조지교(箕子八條之敎)로서 민심을 순 화한 공으로 무안군(務安君)에 봉(封)하 고 무안을 식읍(食邑)으로 받아 관향지로 하였으며, 公을 관조(貫祖. 一世)로 하여 일천여년을이어오면서전남무안을중심 으로 해남,진도,충남 논산, 경북 영해,봉 화 등지에 크고 작은 집성촌을 이루며 21 지파에 7개지구 지역 회장 등이 합심하여 매년 음력 3월 1일이며 이곳 경기묘에 모 여친족의정을함께나눈다. 한편 이날 제향에는 해남파 덕동문중에 서관광버스3대를 동원참석하는등전국 에서 행락철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뒤로하 고 추원보본의 길을 택해 제례 또한 빛냈 으며,광주소재대학원에다니는고고문화 인류학과 18학번 황윤성, 20학번 홍준상 군이 시제관련 논문을 준비하면서 경기묘 를 찾아 열띤 취재를 함으로서 젊은 사람 들은관심이없다는편견을불식키기도하 였다. 무안박씨관조무안군(務安君,휘진승)이하선 조제향 경기묘세일사가지난9일봉행된가운데본전과동서재제관,임원진이함께하고있다. 무안경기묘 무안박씨관조의존영과위패가봉안된경기묘본전제관이제향후함께하 고있다.가운제제복입은제관왼쪽부터태수초헌관,종자아헌관,주화종 헌관효락집례,일훈축관순)